흥국생명 해고자들, 보험사 내부자료 공개
“설계사 115명 명의 도용…500억 더 발견”
검찰, 5백만원 기소로 종결…금감원 ‘쉬쉬’
“설계사 115명 명의 도용…500억 더 발견”
검찰, 5백만원 기소로 종결…금감원 ‘쉬쉬’
비자금 조성 및 상속·증여세 포탈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일가가 계열사인 흥국생명의 보험금 형태로 800억원대의 비자금을 은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태광산업 차명 주식과 각종 무자료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에 이어 비자금의 유지·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나와 검찰의 수사가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흥국생명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는 18일 이 회장 일가의 이름으로 계약된 보험 관련 흥국생명 내부 자료를 공개했다. ‘대주주 관련 명세’(오른쪽 사본 참조)라는 제목의 이 자료를 보면, 이 회장을 비롯해 부인 신유나씨와 어머니 이선애씨, 누나 경훈·재훈씨 등의 이름으로 한번에 1억~2억원을 일시납으로 낸 저축성 보험 계약이 수백건이나 된다. 해복투가 자료를 확보한 이 회장 일가의 계약 규모는 1997~99년 112억원, 2000년 201억원 등 확인한 것만 313억원에 이른다. 이형철 해복투 위원장은 “2001년 이후에도 유사한 보험 계좌에 500억원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회사 쪽 방해로 자료를 확보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해복투는 이 계약의 모집인으로 돼 있는 설계사들은 이름을 도용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흥국생명 동대문지국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이 회장 가족의 일시납 계약을 통해 발생한 수당을 급여 계좌로 받은 뒤 이를 수표로 인출해 담당 국장에게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이런 식으로 이름을 도용당한 설계사가 115명이며, 이 회장 일가가 착복한 수당이 17억5400만원에 이른다고 해복투는 주장했다.
2003년 당시 흥국생명 노동조합은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이던 가운데 직원의 제보로 이 자료를 확보했으며, 이 회장을 횡령과 배임 등 혐의로 고발했다가 21명이 해고됐다. 해복투 관계자는 “일반 직원들은 이 계약을 조회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막아놨고, 별도로 관리하는 특수팀이 있었다”며 “당시에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탓에 보험 유치 수당 17억여원을 가로챈 것만 문제를 삼았는데, 이제 보니 현재 제기되고 있는 고려상호저축은행의 비자금처럼 관리한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2004년 보험사 임직원한테 금지된 ‘경유처리’(보험 유치자의 이름을 바꿔 처리한 행위) 과실만 인정해 이호진 회장 등을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에 앞서 금융감독원은 이 회장 일가의 일시납 보험에 대한 경유 계약과 수당 착복 등을 적발하고 기관경고 등의 조처를 했으나 이 사실을 언론과 노조에 알리지 않는 등 쉬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노조는 2003년 금감원에 정보공개를 요구했으나, 금감원은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해복투 관계자는 “금감원이 이 회장의 비위 사실을 감추기 위해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 관계자는 “해복투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비자금에 관한)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자 이미 종결된 사안에 대해 ‘그렇지 않겠느냐’고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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