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해고자들 ‘수사기원 108배’ 이형철 전국생명보험노조 흥국생명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의장(오른쪽 엎드린 이)과 해고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광화문 본사 앞에서 ‘태광그룹 계열사 각종 불법 및 편법 의혹’을 검찰에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한 뒤 철저 수사 등을 기원하는 108배를 하고 있다. 건물 앞의 커다란 조형물은 ‘망치질하는 사람’(해머링 맨)이고 작은 조형물은 해고자들이 해머링 맨을 풍자해 만든 ‘해고링 맨’이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방통위·국세청·공정위 ‘무력화’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태광그룹의 각종 불법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비리 백화점’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비정상적인 경영이 빙산의 일각처럼 조금씩 드러나면서 시민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편법 상속 및 증여, 비자금 조성, 대주주 재산 불리기를 위한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 등 일찍이 주요 재벌들이 써먹던 해묵은 수법과 함께, 맞춤형 법 개정이나 인허가 등을 위한 로비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 수천억대 비자금 및 차명 주식 보유 이호진(48) 태광그룹 회장은 아버지이자 창업자인 고 이임룡 회장이 남긴 태광산업 주식을 여러 차명계좌로 보유하고 있다가, 그 일부를 태광산업의 자사주 매입 형태로 현금화해 1600억원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회장이 비슷한 규모의 차명 주식을 지금도 갖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의 비자금은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회장 및 가족 명의로 흥국생명에 가입한 보험도 그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 한번에 1억원 이상을 일시납으로 냈는데, 드러난 것만 313억에 이른다.
■ 정·관계 전방위 로비 의혹 태광그룹의 로비 의혹은 정·관계에 전방위로 뻗쳐 있다. 우선 태광 계열의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티브로드홀딩스가 방송법의 독점 규제 조항을 피하려고 큐릭스를 우회적으로 인수한 뒤 곧바로 방송법 개정과 함께 방송통신위원회가 티브로드-큐릭스 합병을 승인해준 과정에 대해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특별 세무조사를 통해 상속세 탈루액 추징금을 800억원이나 물리면서도 검찰 고발을 하지 않은 국세청도 로비의 대상이 됐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국세청을 압수수색한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쌍용화재(현재 흥국화재) 인수 당시 자격을 상실한 흥국생명을 대신해 태광산업이 우회 인수할 수 있도록 허가한 금융당국과,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를 눈감아준 공정거래위원회도 의혹의 도마에 올랐다.
■ 비상장사 통한 3대 세습 이 회장은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용 상품권을 발행하는 회사인 한국도서보급을 비롯해 티시즈(옛 태광시스템즈), 티알엠(태광리얼코) 등 3대 비상장 회사를 통해 열여섯 살짜리 아들에게 3대 세습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신과 아들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한국도서보급에 그룹의 2대 모기업인 대한화섬 지분을 싸게 넘겨 한국도서보급이 대한화섬의 최대 주주가 되게 했다. 대한화섬은 흥국생명과 흥국화재, 고려상호저축은행 등 금융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다.
■ 빈발하는 부당내부거래 태광그룹은 재계 40위의 외형에 걸맞지 않게 전근대적인 경영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5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상장사가 5개에 불과하고, 모든 계열사를 이 회장과 가족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불투명한 구조를 기반으로 부당내부거래를 습관처럼 일삼고 있다. 대주주 개인회사가 짓고 있는 골프장 회원권을 계열사들이 무더기로 사들여 건설자금을 지원했고, 광화문 흥국생명 본사 건물을 비롯한 회사 재산을 계열사끼리 빈번하게 사고팔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서보급을 비롯해 이 회장 부자가 100% 지분을 가진 비상장사에 계열사들이 이익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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