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행장 “정부 보유주식 현물출자 요청”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프로젝트 파이낸싱 형태로 100억달러(약 11조원)를 지원하기로 한 수출입은행이 정부 재정으로 자본금 확충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건국 이래 최대 국외 프로젝트 수주’라고 정부가 자랑해온 아랍에미리트 원전사업이 국민 세금을 동원한 자금지원으로 추진되는 셈이다.
김용환 신임 수출입은행장은 9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 본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원전사업에 100억달러를 대출해도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자본금을 미리 확충할 것”이라며 “재정이 어려우니까 정부 보유 주식 등을 현물출자하는 방안 등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행장은 “지금 법적으로 수출입은행 수권자본금이 8조원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이것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은 6조8600억원이며,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1.3%다. 자기자본을 늘리지 않고 100억달러를 대출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다른 은행들에 비해 낮은 수준인 자기자본비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 행장은 “브라질 고속철도 건설 등 대형 국제 프로젝트를 수주하려면 트랙 레코드(수주 경험)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큰 파이낸싱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노하우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하는 사업”이라며 원전사업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역마진 우려에 대해 그는 “이제 부지 선정과 도로 건설 등을 하고 있는 상태라 구체적인 자금조달 계약을 맺으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며 “협상을 해봐야 알겠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금리 가이드라인을 따르기 때문에 역마진이 날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거액의 초장기 대출을 정부 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라며 “수출입은행의 원래 역할이 수출금융을 지원하는 기구인 것은 맞지만, 수주 사실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떠안게 될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역마진이 날 우려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대출기간은 28년이지만, 우리가 조달할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10년밖에 안 될 것이기 때문에 만기 연장이 필요할 것”이라며 “대출기간이 너무 길어서 단순히 금리만 가지고 역마진 여부를 따질 수 없는 복잡한 비용 요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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