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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재정능력 맞춰 점진적으로 복지 강화”
“낭비 줄이는 재정개혁으로 보편복지를”

등록 2011-08-02 19:16

제2회 한겨레사회정책포럼이 ‘복지포퓰리즘인가, 토건포퓰리즘인가?’를 주제로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 이정우 경북대 교수, 이용섭 민주당 의원,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 김태일 고려대 교수.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제2회 한겨레사회정책포럼이 ‘복지포퓰리즘인가, 토건포퓰리즘인가?’를 주제로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 이정우 경북대 교수, 이용섭 민주당 의원,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 김태일 고려대 교수.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제2회 한겨레사회정책포럼
복지포퓰리즘인가 토건포퓰리즘인가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내년 총선·대선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포퓰리즘 설전’이 뜨겁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는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 주요 사회정책마다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복지포퓰리즘’의 실체를 진단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제2회 한겨레사회정책포럼 ‘복지포퓰리즘인가, 토건포퓰리즘인가?’이다. 이정우 교수(경북대 경제학)는 주제발표에서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강변하는 건 혹세무민”이라며 “한국에서 포퓰리즘의 실체는 오히려 토건”이라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이후 벌어진 자유토론에서는 여야 의원 및 학계 전문가들의 열띤 공방이 이어졌다. 이 포럼은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 104호실에서 열렸다.

주제발표복지 아닌 토건이 포퓰리즘 실체

낮은 복지지출·불평등 심화 수출주도 경제·자영업 과잉
저출산·고령화라는 5가지가 복지국가 만들어야 할 이유

이정우
이정우

무상급식 논쟁이 서울시의 주민투표 발의로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엠비(MB)정부는 최근 높아지는 복지확대 요구를 ‘복지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면서 맞서 싸우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무상급식의 경우 문제는 예산이 아니라 철학이다. 무상급식을 하는 북유럽 몇 나라는 2차대전 직후부터 무상급식을 실시했다. 당시 소득 수준은 현재 우리보다 훨씬 낮았다. 애들 가슴에 낙인을 찍는 점심시간이 아니라 함께 웃으며 먹는 즐거운 점심시간이 되게 하자. 필요한 건 큰 예산이 아니라 작은 상식이다.

한국에서 복지는 포퓰리즘이 아니다. 한국을 망치는 포퓰리즘이 있다면 그것은 걸음마 상태의 복지가 아니고, 융성하다 못해 과잉인 토건이다. 토건은 얼핏 보면 국민들의 이익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기공식·준공식도 호화롭게 열리고 정치인들이 생색을 내기에 좋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국의 막개발, 과잉개발, 세계 최고의 땅값이다. 토건국가야말로 눈앞의 인기에 급급해 나라의 국제경쟁력을 망친 대표적인 포퓰리즘이다.

복지, 복지국가가 포퓰리즘이 아니고 필수인 이유 5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너무 낮은 복지지출’이다.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은 국제적 표준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둘째,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다.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 정부에서 3% 정도였는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각각 6%, 9%로 높였다. 훨씬 강력한 조처가 필요하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에 20%였던 복지예산 비중을 마지막 해에 28%로 올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 숫자는 제자리걸음이다.

셋째, 수출주도형 경제를 지속하기 위해서도 복지국가가 필요하다. 복지국가가 확립된 유럽 경제가 일본·미국처럼 복지국가 후진국에 비해 훨씬 더 개방적이고 수출의존적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은 유럽 수준의 개방경제이면서도 일본·미국보다 낮은 후진적 복지국가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런 체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수출주도형 경제를 포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선택은 복지국가뿐이다.

넷째, 자영업 과잉이다. 한국의 총고용에서 차지하는 자영업 종사자 비율은 3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다. 한국의 고용구조는 대략 정규직 33%, 비정규직 36%, 자영업 31% 수준이다. 세 집단이 전체 취업자를 3등분하고 있는 구조다. 이런 나라는 극히 드물다. 왜 자영업자가 이렇게 많을까? 분배·복지를 무시하고 성장일변도의 정책을 써왔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끼리 경쟁이 너무 심하다 보니 다들 장사가 안돼 울상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다섯째, 저출산·고령화의 시한폭탄이다. 오랫동안 복지를 무시하다 보니 생긴 암울한 결과가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다. 한시가 급하다. 더 이상 분배·복지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시비 걸지 말고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해답은 복지국가뿐이다. 지금이야말로 40년간의 성장만능주의를 반성하고 정상적인 국가를 만들어야 할 때다. 분배와 성장이 동행하며, 분배를 통한 성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인식을 가질 때다. 성장을 계속하기 위해서도 분배·복지에 눈을 돌려야 한다. 복지국가를 늦출수록 불리하다.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강변하는 혹세무민은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종합토론

재정 고려 않은채 표만 겨냥복지지출, 소득에 맞춰 늘려야-나성린
기존 복지정책 효과부터 검증국민이 지출수준 선택하도록-안종범

복지포퓰리즘 비판 무원칙중복성·선심성 예산 삭감을-이용섭
복지내용·확대 우선순위 등구체적 이슈 논의에 힘써야-김태일

“포퓰리즘 경계해야” 대 “원칙도 일관성도 없는 주장”

나성린
나성린
나성린 의원(이하 나) 민주당을 포함하여 좌파정당들은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 등 재정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무상복지를 도입하려 한다. 한국조세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지금의 복지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사회복지지출은 2050년에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국내총생산 대비 25%)을 넘어서게 된다. 또 소득 수준이 선진국에 도달하면 복지 역시 저절로 선진국 수준에 이르게 된다. 성급하고 무책임한 무상복지 주장은 표만 의식한 행태다.

이용섭 의원(이하 이) 지난 1월 민주당이 ‘3+1정책’(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반값등록금)을 들고나오자, 정부여당은 난데없이 ‘포퓰리즘’, ‘세금폭탄’ 운운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한나라당은 지금 좌충우돌하고 있다. 복지정책에서 마치 아침엔 민주당, 낮엔 한나라당, 저녁엔 민주노동당인 듯 왔다갔다하고 있다. 정부 역시 갈팡질팡이다. 재정건전성을 지키겠다면서도 대규모 부자감세 기조는 철회하지 않고 있다. 정부여당의 복지 포퓰리즘 비판에는 원칙도 일관성도 없다.

안종범
안종범
안종범 교수(이하 안) 포퓰리즘에 빠지면 책임지는 복지, 실천하는 복지를 할 수 없다. 미래의 국민들을 위해서도 포퓰리즘을 차단해야 한다. 정치인·관료·전문가들이 내놓는 주장과 발언에 무한책임을 부여하고 끊임없이 모니터링해야 한다. 한번 내놓은 공약과 주장은 영원히 검증되고, 사후에 평가되도록 해야 한다. 정책실명제라는 제도를 통해서도,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서도 좋다. 복지는 국민통합을 지향해야 한다. 즉, 국민의 부담능력과 복지수준을 연계하고,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

김태일 소장(이하 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다수는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복지 확대의 내용과 속도에서 이견이 있을 뿐이다. ‘포퓰리즘’ 논쟁도 복지 확대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무상급식이나 반값등록금 등 특정 프로그램에 대한 논쟁의 측면이 강하다. 복지논쟁이 발전하려면 이제 복지제도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복지 프로그램 확대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할지,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이슈를 논의해야 한다.

“재정능력에 맞게” 대 “조세·재정개혁으로 보편복지”

이명박 정부의 복지예산이 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발제자의 주장은 잘못이다. 복지예산은 총예산 대비로나 지디피 대비로나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서유럽 복지국가와 미국·일본의 복지 수준이 큰 차이가 있듯 선진국의 복지 수준도 다양하다. 그런데 서유럽 복지국가는 1970년대부터 재정위기를 맞고 있고, 최근에 국가부도 사태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 재정능력과 경제능력에 맞게 점진적으로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능력에 맞지 않는 복지제도를 도입하면 재정위기와 도덕적 해이로 인해 경제가 망가지게 된다. 1인당 국민소득 증가에 맞춰 사회복지지출을 점진적으로 증가시키고,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조세부담률과 사회보장부담률을 점진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 경제성장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

이용섭
이용섭
민주당은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고 조세부담을 급격하게 증가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보편적 복지정책을 짜고 있다. 국채 발행이나 세금 신설, 급격한 세율 인상을 통해 복지 재원을 조달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재정·복지·조세개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보편복지를 실현하려면 낭비적 지출을 축소하는 강도 높은 ‘재정지출 개혁’을 해야 한다. 소비성·중복성·선심성 예산과 시급성이 떨어진 예산을 삭감하고 과도한 재정팽창을 억제하면 된다. 임대·배당소득자가 전국민의 9% 정도인데 여기에 과세하면 상당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국제비교를 해서 우리나라 복지지출이 적으니 늘려야 한다는 식의 논의는 의미없다. 복지지출을 얼마나 또 어떻게 늘릴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모든 복지정책을 한꺼번에 다 할 순 없다. 무작정 좋다고 서둘러 하기에는 복지정책마다 부작용이 크다.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상태에서 국민들이 감내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세부담과 사회보험부담을 기초로 복지재정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도 이를 기초로 정해야 한다.

재정이 취약한 상황과 국가 경쟁력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결코 낮지 않다. 소득세율이 낮다고 하지만 면세점 이하가 50%에 이른다. 기업의 경우 법인세도 있지만 여기저기 뜯기는 준조세도 많다. 학교급식의 경우 모든 학부모들이 급식쿠폰을 동사무소에서 구입(저소득층은 무료)하게 하고 쿠폰 색깔을 똑같이 하면 낙인효과를 피할 수 있다. 즉, 재정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보편적 무상급식을 시행하지 않더라도 급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단순히 서구 복지국가 모델을 따라갈 것은 아니다. 복지 선진국가들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단점은 버리고 장점은 취하는’ 복지 후발국가의 이점을 살리고, 우리 특성에 맞는 ‘창조형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효과 검증 선행” 대 “폭탄 터지기 전에 복지 해야”

한국의 조세정책과 복지정책의 분배개선 효과가 매우 저조하다. 복지의 사각지대가 넓고 복지전달체계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복지정책효과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자활 프로그램이 빈곤 탈출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제대로 평가해본 적이 있는가? 정책 대상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으면 복지는 포퓰리즘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인기가 없더라도 기존의 정책들부터 점검해야 한다. 특히 국민을 잠시 현혹하기보다는 부담 가능성을 고려해 적정한 복지지출 수준을 국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구로 선정되면 8개 부처로부터 32개 항목의 복지급여를 받는 반면, 선정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 받는다. 이런 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 복지논쟁을 정치권에서 이제 밑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김태일
김태일
복지에서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보험은 보편주의 원리를 따른 것이지만 공공부조(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선별주의 원리를 취하고 있다. 물론 보편주의가 지배적인 국가와 선별주의가 주도적인 국가는 있다. 그러나 어느 국가도 복지를 제공할 때 보편주의 혹은 선별주의만 택하지는 않는다. 발제자가 말한, ‘한국이 복지국가로 빨리 가야 하는 5가지 이유’ 중 일부는 의문이다. 가령 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 국가들의 경우 대체로 대외의존도가 높고 유럽 국가들에 비해 복지체제는 취약하지만 과거 수십년의 경제성과는 유럽보다 더 좋다. 또 자영업자의 과잉 그 자체가 복지국가로 빨리 가야 하는 이유라고 보기에는 논리가 다소 약하다.

이정우 교수 아이들 무상급식은 여야가 쉽사리 합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포퓰리즘이다 뭐다 하면서 주민투표까지 가고 있는 게 한국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영국에서 1970년대에 복지를 선별적으로 줄 때 재산 등 수천가지 항목에 걸쳐 조사했고, 거기에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무상급식에 대해 복지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나경원 의원한테 묻겠다. 무상급식의 단점이 있다면 뭐냐, 단 한가지라도 말해보라. 엠비정부와 한나라당은 “어차피 노령화로 인해 연금 부담이 커지고 쓸 돈이 많아지게 돼 있으므로 가만히 있어도 나중에 복지국가 수준의 복지지출로 가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패배주의에 불과하다. 연금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이런 추세를 막아볼 생각부터 해야 할 것 아닌가?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하루빨리 복지를 해야 한다.

정리 조계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kyewan@hani.co.kr

주제발표: 이정우 경북대 교수

토론: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

이용섭 민주당 의원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사회: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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