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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불평등 FTA’ 피해 현실로…농축산·차세대산업 ‘벼랑’

등록 2011-11-22 22:50수정 2011-12-06 11:03

※그림을 클릭하시면 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미 FTA 비준 날치기|여당 단독처리 거대한 후폭풍
미국요구에 계속 밀려 불공정한 퍼주기 귀착
무역흑자 1조6천억원 때 피해지원 22조원 쏟을판
국민 일상까지 깊은 영향 사회적 약자 큰타격 우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충격과 변화를 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 2006년 협상이 시작된 뒤 다양한 찬반 논쟁이 이어졌음에도 결국 국민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비준안이 일방 처리된 현실은, 한-미 협정이 우리 미래에 끼칠 깊고 넓은 파장을 예고한다. 찬성 쪽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불가피한 선택이자 도약의 기회”라는 긍정론을 펴지만, 실제로 협정 발효가 우리 경제와 일반 국민들의 삶에 끼칠 부정적 파급 효과는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취재 봉쇄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강행 처리하기 위해 기자들의 방청석 출입을 막고 비공개 진행을 하자, 민주당 이용섭 의원(왼쪽 두번째)이 기자들의 사진취재를 위해 경위들을 밀치고 국회 본회의장 문을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취재 봉쇄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강행 처리하기 위해 기자들의 방청석 출입을 막고 비공개 진행을 하자, 민주당 이용섭 의원(왼쪽 두번째)이 기자들의 사진취재를 위해 경위들을 밀치고 국회 본회의장 문을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무엇보다 ‘이익 균형’ 차원에서 이번 협정은 우리에게 원천적으로 불리했고, 결과도 그랬다. 협상 기간 내내 미국의 공격적인 개방 확대 요구에 우리는 수세적 태도로 일관했다. 협상 초기 쇠고기 등 이른바 ‘4대 선결 과제’를 사실상 수용했고, 지난해에는 재협상을 통해 자동차 산업 등에서 미국 업계의 이익을 또다시 대폭 받아들였다. 재협상 과정에서 우리 자동차 분야의 기대 이익은 최대 4조원가량 줄었다. 투자 협정에서도 반덤핑 관세 제한 등 우리 쪽 요구는 용두사미가 된 반면, 투자자-국가 소송제 등 미국 쪽 요구는 골격이 그대로 협정문에 반영됐다. ‘불공정한 퍼주기 협정’이란 비판이 줄곧 제기돼 온 이유다.

한-미 협정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정부는 향후 15년 동안 대미 수출은 200억달러, 대미 무역수지는 21억달러 흑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총생산 5.66%, 일자리 35만개, 전체적인 경제 후생 321억달러(37조원)가 각각 증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김영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교역 확대로 인한 소비와 투자 증가 효과를 고려하면 내년 경제성장률이 0.1~0.3%포인트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부의 전망을 봐도, 자동차와 방송·통신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유리한 분야가 거의 없다. 제조업을 제외한 농축수산·제약·방송·영화·지적재산권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생산과 소득이 감소한다. 제조업 중에서도 전기전자·섬유·철강은 영향이 미미하고, 기계·화학 업종은 무역 적자가 예상된다. 자동차 산업의 연평균 흑자(6억2500만달러)가 전체 무역흑자(5억7300만달러)를 웃돌 정도로 산업별 이익 균형이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 쪽 셈법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재협상 직후 “향후 10년 동안 한국 시장으로 상품 수출만 100억~110억달러 늘고 무역수지는 33억~44억달러 개선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두 나라가 이번 협정의 경제 효과에 대해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는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사국들 수준이 비슷하면 양쪽이 득을 볼 확률이 있지만 한국과 미국같이 격차가 큰 경제권이 합쳐지면 작은 쪽이 경쟁으로 인해 도태되기 쉽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전망하는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우리 돈으로 연간 1600억원(1억4000천만달러)이다. 농축산업 등 취약 산업에 쏟아붓는 정부 지원금은 앞으로 10년 동안 22조1000억원에 이른다. 대미 흑자를 다 합쳐도 국내 산업의 손실 비용이 더 큰 것이다. 이미 미국산 농축수산물은 고율 관세를 물고도 가격 경쟁에서 국내 생산자를 훨씬 앞서는 상황이다. 정부의 취약 산업 지원이 사실상 관련 산업을 서서히 고사시키려는 ‘폐업 보조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통상 원칙인 ‘비교 우위’를 따를 경우,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게 농축수산업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동걸 한림대 객원교수(경제학·전 금융연구원장)는 “제약, 의료, 정밀기기, 정밀화학, 항공·우주, 소프트웨어 등 우리 경제의 차세대 산업 대부분이 미국에 뒤진다. 비교 우위로 따지자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사실상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적 합의 없이 협정이 발효된 점은 향후 국정 운영과 사회 통합에 적잖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한-미 협정은 지난 10월 미 의회의 비준 이후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투자자 소송제의 위험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잇단 우려와 경고를 ‘괴담’으로 치부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시장 만능주의의 폐해가 현실화되면서 세계 경제질서가 요동치는 ‘상황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외면했다. 장하준 교수는 “자유무역협정은 한번 맺으면 기한 없는 영원한 협정이다. 결과가 예상과 다르다고 번복할 수 없다. 특히 복지와 사회안전망 수준이 낮은 한국 사회에서는 약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행정부 수반이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 분리해 차분하게 짚어봐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미 협정은 경제적 득실에 머물지 않고 개개인의 생활까지 깊숙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 투자자 소송제와 개방 폭을 되돌릴 수 없다는 래칫조항(역진방지) 등이 공공정책에 끼칠 영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의 쌀과 쇠고기 개방 압력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경제위기에 봉착한 미국이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공세적으로 협정을 활용할 경우 우리 사회의 큰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독소조항 끝내 못고친채…

효력
미국서 국내법이 우선, 한국선 국내법과 동등
ISD 미국 투자자에 유리, 한국 거액배상 우려
역진방지장치 개방폭 늘리면 되돌리지 못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더라도 ‘독소조항’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미 협정은 법적 지위가 두 나라에서 서로 달라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협정이라는 평가를 받는데다,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등 우리 경제를 옥죌 수 있는 여러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에서 한-미 협정은 그 자체로는 어떠한 국내법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 미국 법이 한-미 협정에 우선하고 협정을 근거로 미국 법원에 소를 제기하지 못한다고 미국의 한-미 협정 이행법이 명시하고 있어서다. 한-미 협정의 내용을 담은 이행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회를 통과한 한-미 협정이 그대로 국내법과 동등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 ‘특별법 우선의 원칙’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국내법보다 우선할 수도 있다. 정부는 국제법적 효력은 동일하다고 설명하지만, 미국이 한-미 협정 적용에 더 큰 재량권을 누리는 것은 분명하다. 예컨대 미국은 일부 협정내용의 이행을 최대 1년까지 유예할 수 있다.

상대방 국가가 협정상 의무나 투자계약을 어겨 손해를 입혔을 경우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신청해 손해배상금을 받는 제도인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막판까지 논란을 불러왔다. 이 제도는 기본적으로 투자자를 위한 제도로, 정부는 물론 지자체의 법령과 정책, 사법부의 판결까지도 대상이 된다. 당사자가 뽑은 중재인 3명이 판정을 맡는데, 이들은 법관과 같은 공적 신분을 지니지 않는다. 중재 후보자는 각 나라가 4명씩 추천하는데, 실제로 중재인으로 활동한 미국인은 137명이지만,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미국 투자자가 제기한 중재(108)가 전체 사건의 3분의 1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리 투자자를 보호하는 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미 협정은 서비스와 투자 분야에서 개방 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어도, 뒤로 후퇴하는 방향으로는 되돌릴 수는 없는 역진 방지 장치(래칫 조항)를 뒀다. 예컨대 스크린쿼터의 경우 협정에는 ‘73일 이상’으로 돼 있지만 우리 정부가 60일로 일단 축소하고 나면 나중에라도 73일로 복원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경제자유무역내 영리병원 허용이나 공기업의 민영화도 마찬가지다.

미래 최혜국 대우 조항도 불씨를 안고 있다. 미래 최혜국 대우란 협정 발효 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새로운 통상협정을 맺어 더 많은 개방을 약속하면, 미국에도 자동적으로 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미 협정에서 처음 도입됐고, 이후 유럽연합과의 협정으로 확대됐다.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고도 미국은 우리나라가 내주는 개방의 열매를 손쉽게 따먹을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스냅백’은 우리나라에만 적용되는 조항이다. 자동차와 관련해 우리가 협정을 위반하거나, 미국 쪽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정될 경우 6개월 내 미국의 관세 철폐가 즉시 복귀된다. 미국의 무역보복이 일상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밖에 한-미 협정이 개방해야 할 분야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것(포지티브 방식)이 아니라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을 적는 네거티브 방식을 택한 것도 장차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 방식에 따르면, 미래에 생겨날 새로운 서비스 시장은 원칙적으로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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