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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취업 못해…노후 불안해…
‘생계형 전업 주식투자자’ 는다

등록 2012-02-21 21:36

6년간 29살 이하 67%·60살 이상 43% 증가
‘정치’ 등 테마주 고위험 투자·단타매매 경향
‘스마트폰 거래’ 급증…“좋은 일자리 부족탓”
“식당, 통닭집 차렸다 얼마 못 가 문 닫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인테리어 비용만 해도 수천만원인데 차라리 그 돈으로 주식투자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4년 전에 다니던 중소기업을 그만둔 김아무개(51)씨는 지인 셋과 경기도 광주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해 주식투자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40대 후반에 새로운 직장 구하기도 어렵고 출혈 경쟁에 내몰리는 자영업도 엄두가 안 났다. 돈 굴릴 곳은 마땅찮은 상황에서 직장 다닐 때 주식투자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던 경험도 떠올랐다.” 김씨는 우량주 중심의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투자원칙 덕에 얼마간 수익을 거뒀지만 지난해 닥친 금융위기로 결국 손실을 봤다. 그는 이를 만회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최근 들어 투자원칙이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명퇴나 은퇴 뒤 노후가 불안한 중장년층, 대출 이자 갚기도 팍팍한 직장인, 취업 길이 막힌 20대 대학졸업자들이, 주식투자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전업투자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늘어나는 주식투자 인구, 테마주 열풍의 이면에 ‘생계형 주식투자자’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직장인이나 고액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손실을 무릅쓰는 위험한 투자를 하진 않는다”며 “주가조작 단속을 하다 보면 명퇴자나 청년실업자들이 단기간에 돈을 벌겠다는 욕심 때문에 테마주 등에 투자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박아무개(28)씨가 그런 경우다. 어머니한테 ‘투자’받은 1000만원을 종잣돈으로 하루 1~2%의 수익을 노리고 사고팔기를 거듭하는 ‘단타’를 한다. 박씨는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은 눈높이에 안 맞아 취업을 안 하고 있다. 용돈 정도는 내 손으로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운만 좋으면 하루에도 10%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어 본격적으로 주식을 배워볼까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도 예외는 아니다. 강아무개(41)씨는 승진의 벽을 느끼면서 정년퇴직의 꿈을 접었다. “한창 집값이 뛰던 2006년에 더 늦어지면 내집 마련의 꿈은 실현 불가능해 보였다. 실질임금은 제자리인데 은행대출 이자는 올라가고 원금상환 시기까지 닥치면서 ‘하우스푸어’ 신세다.” 그는 지난해부터 본업보다 주식공부에 더 열중이다. 정치인 테마주에 투자해 벌써 2~3배의 이익을 냈지만 아직 팔 생각이 없다. “미친 짓인 줄 안다. 하지만 지난해 초 ‘대선주’가 들썩일 때 일부 주식은 8배 이상 올랐다. 대선이 본격화되면 더 오를 것으로 본다.”

한국거래소 자료를 보면, 2010년 주식투자인구는 경제활동인구 5명 가운데 1명꼴(19.5%)이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특히 젊은층과 노년층의 주식투자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9살 이하 주식투자자는 33만7000명으로 2004년에 견줘 67%나 늘었다. 60살 이상은 78만3000명으로 같은 기간 43% 증가했다. 30~50대의 증가율이 정체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증권투자 관계자는 “젊은층이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주식거래가 최근 2~3년새 크게 늘었고, 특히 스마트폰 거래 비중은 10배 가까이 증가해 전체 주식거래의 15%대에 이른다”며 “젊을수록 거래기간도 짧고 위험도가 높은 주식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는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투자위험종목으로 지정된 424개 종목의 개인투자자 매매비중이 98.7%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들은 평균 10만원 이상의 매매손실을 기록했다. 주식대박의 꿈은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던 셈이다. 주식보다 위험도가 훨씬 큰 파생금융상품 투자자 중에도 개인 비중이 몇년새 50% 이상 늘었다.

김수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은 “중소기업에 들어갈 마음이 없는 대학졸업자들은 부모의 부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정규직으로 근무했던 장년층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을 기피하면서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주식투자를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며 “일자리 부족도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좋은 일자리가 없는 게 이런 흐름을 만들어 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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