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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친환경·신뢰로 똘똘…생협, 공룡마트에 도전장

등록 2012-06-07 18:48수정 2012-06-11 11:11

[99%의 경제 : 협동조합이 싹튼다]
협동조합이 싹튼다 ②동네 생협, 이마트에 도전하다
계약생산·직거래로 먹거리 싸게
소비자도 생산자도 걱정 ‘훌훌’

3대생협 합쳐 소비조합원 56만
3년새 매출 2배 가파른 성장세

한살림과 아이쿱 같은 우리의 생협은 2010년 배추값이 한 포기에 1만5천원까지 치솟았을 때 2천원 아래의 평소 가격 그대로 공급했다. 소비자를 살렸다. 이듬해 5월 산지 배추값이 300원까지 떨어졌을 때는 계약재배 농민들에게 1천원의 가격을 지급했다. 농민을 살렸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신뢰로 무장한 생협이 이마트로 대표되는 대형 유통기업의 독과점 아성을 허물어뜨릴 수 있을까?

‘배추 한통에 1만5000원.’ 2010년 가을배추는 금값이었다. 고랭지 출하 물량이 달려 벌어진 현상이다. 이때 한켠에서 배추 한통을 2000원에 못 미치는 값으로 팔아 주목을 받았다. 마법같은 일을 만들어 낸 곳은 바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이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주부 김수남(52)씨는 지난해 8월 이마트를 ‘끊었다’. 대신 집 근처 아이쿱 생협 매장에서 장을 본다. 이곳엔 농약을 쓰지 않은 농산품과 항생제 없이 키운 축산품, 우리밀 라면, 공정무역으로 수입한 커피 등이 갖춰져 있다. 샴푸·비누·화장지 등 공산품도 있어 한번에 필요한 물건을 모두 사는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다. 가격도 ‘착하다’. 쌀이나 콩나물·달걀·두부 등 몇몇 품목은 친환경 제품인데도 일반 마트보다 더 싸다. 한달에 회비 1만원을 내면, 유기농 제품을 할인가로 살 수 있다. 김씨는 “먹거리의 안전성을 믿을 수 있고, 무엇보다 가격이 싸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귀농한 장경호(42)씨는 한살림 생협의 생산자 조합원이다. 그의 비닐하우스에는 ‘세 가지’가 없다. 농약과 화학비료, 석유다. 한살림의 유기농가는 화석연료를 써서 온도를 높이는 ‘가온’도 하지 않는다. 지구에 해롭기 때문이다. 오직 땅의 힘과 인증받은 자연 퇴비를 써서 어린잎 채소와 시금치를 키운다. 일반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보다 신경쓸 일이 훨씬 많다. 하지만 ‘판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장씨는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은 모두 한살림에서 가져간다”며 “판매 걱정 없이 오직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협동조합의 토양이 척박하다. 그래도 협동조합 기업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분야를 꼽는다면, 식품의 생산·유통을 담당하는 생협 쪽이다. 일본의 생협 제도를 본뜬 것으로, 유럽의 소비자협동조합과 가깝다.

한살림·아이쿱·두레 등 국내 3대 생협의 소비자 조합원은 지난해 말 기준 56만여가구로 추산된다. 전체로는 국내 가구의 3% 수준을 넘어섰다. 매출액도 6000억원대에 이른다. 3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나는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 매출이 30조원대에 이르는 대형마트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가능성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아이쿱 생협 조합원 김수남(왼쪽)씨가 5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자연드림 신내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면서 김소운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아이쿱 생협 조합원 김수남(왼쪽)씨가 5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자연드림 신내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면서 김소운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생협의 가파른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신뢰’가 첫손에 꼽힌다. 생협은 소비자 조합원과 생산자 조합원의 권익 향상을 맨 앞에 놓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바로 생협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반면 주주의 이익은 신경쓰지 않는다. 주주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복잡한 유통 과정과 비싼 홍보·판촉 비용도 생략된다. ‘계약 생산’과 ‘직거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장경호씨는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고품질의 물건을 살 수 있고, 생산자는 보다 높은 가격에 안정적으로 물건을 팔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일반 농산물은 중간 유통 과정에서 60% 정도의 이윤이 추가로 붙지만, 한살림 생협은 25%의 수수료만 붙여서 판다.

1990년대에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농산물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올 때, 생협의 신뢰가 빛을 발했다. 최기형 한살림전국생산자연합회 과채분과대표는 “한살림의 생산자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표로 농사를 짓지 않는다”며 “소비자도 이 점을 믿어줬기 때문에 30년 가까운 한살림의 역사가 유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6일 오후 충북 청주의 한살림 생산자 조합원인 장경호·이대경 부부가 아이들과 잠시 여유를 즐기고 있다. 장씨 부부는 청경채·비트·비타민 등 6가지 어린잎 채소를 유기농으로 재배해 한살림에 전량 납품한다. 최현준 기자
6일 오후 충북 청주의 한살림 생산자 조합원인 장경호·이대경 부부가 아이들과 잠시 여유를 즐기고 있다. 장씨 부부는 청경채·비트·비타민 등 6가지 어린잎 채소를 유기농으로 재배해 한살림에 전량 납품한다. 최현준 기자
최근 일부 생협은 대규모 유통단지를 만드는 등 규모의 경제를 갖춰나가고 있다. 농수산물뿐만 아니라 공산품까지 갖추도록 매장을 대형화해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도록 했다. 규모를 갖추면서 가격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실제 추석이나 설 명절 때 대형마트와 생협 제품의 가격을 비교해 보면, 생협 쪽이 10~20% 더 싼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생협이 기업으로서 갖는 단점도 많다. 조합원 전체가 1인1표 방식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다 보니 신속한 결정이 어렵다. 주식을 따로 발행하지 않아 자본 조달도 힘들다.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자본주의 경쟁 체제에서 큰 약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단점은 곧 협동조합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강민수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사무국장은 “유럽과 북미 협동조합들이 2008년 금융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데에서 볼 수 있듯이, 생협의 보수적 경영은 기업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청주/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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