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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균형잃은 경제교육, 이대론 아니되오!

등록 2012-07-03 11:11

일러스트레이션 어진선
일러스트레이션 어진선
[헤리리뷰]
경쟁·이기심뿐 협력·호혜 없어
인간 행복이란 가치 회복해야
100년 만의 가뭄으로 대지가 타들어가던 6월 하순, 어느 경제신문은 두 가지 뉴스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집이 웬수여…하우스푸어의 눈물”, “밥 먹을 때도 애들은 쉼없이 카카오톡, 스마트폰에 뺏긴 가정교육”.

집값이 계속 오를 거라 믿고 대출받아 집을 샀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가계. 심야 아이들 공부방에서, 아침 밥상머리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자녀와 부모의 미디어전쟁. 오늘날 평범한 한국인의 심란한 자화상이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더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휴대전화, 게임 등 디지털 미디어가 아이들의 시간과 마음을 사로잡은 지 오래건만, 학교에 체계적인 미디어 리터러시(바로 알기) 교과과정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교문을 나서는 순간 현실 경제의 ‘정글’에 던져지지만 학교에서는 ‘돌도끼’ 한 개 정도의 경제지식과 판단력을 쥐여줄 뿐이다. 거의 모든 졸업생이 평생 다시 볼 일이 없는 미적분은 왜 그리 깊이 배우고, 모두가 외국에 나가서 학술회의 할 것도 아닌데 영어는 왜 그렇게 진이 빠지도록 오래 배우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들었던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다.

재미없고 어렵고 실용성 없는 교과서

‘좌편향’이니 ‘우편향’이니 하면서 몇 년간 말도 많았던 경제교육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초·중·고 사회나 경제 시간에 배우는 경제는 이념적 편향을 떠나서 일단 재미가 없는 게 문제다. 교과서가 어려운 개념들로 덮여 있는데다 경제가 정치나 법, 윤리, 사회, 문화 등 다른 사회적 관계와 분리되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듯 ‘표백’된 이론을 전개하니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경제는 어렵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아이는 실생활에서 신문 경제면 읽기 등으로 배운 것을 응용해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반쯤 ‘경제맹’이 된 시민들은 ‘신용카드 대란’ ‘중국펀드 대란’ ‘주택대출 대란’ 등 각종 대란에 단골로 휘말리며 손해를 보는 ‘봉’ 노릇을 하게 된다.

교과서의 내용 구성도 균형을 잃어 학생들이 경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어느 분야는 지나치게 많이 다루고, 다른 분야는 원래 중요하고, 요즘 부쩍 중요해지는데도 소홀히 다룬다. 갈수록 비중있게 다뤄지는 분야는 시장의 원리와 기능에 관한 것이다. 시장에서 활동하는 주역인 기업에 대해서도 충분히 다룬다. 둘 다 혁신과 생산력 발전을 위해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고 재분배 기능을 하는 정부의 역할도 시장 못지않게 중요함에도 이를 다루는 데는 인색하다. 기업과 함께 생산의 한 축을 다루는 노동은 더 찬밥 대우다. 학생들 대부분이 졸업하면 노동자가 되고, 그것도 어려워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쓰게 되는 상황인데도, 교과서는 태연하다. 예를 들어 2013년부터 바뀌는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는 종전에 있던 ‘시장기능의 한계와 정부 개입’ 단원은 극히 축소되고, 금융시장의 이해나 자산관리 분야가 새로 들어오게 된다.

시장의 효율과 생산성을 강조하는 현행 경제교육은 자연스레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경제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을 인간관으로 상정한다. 현행 7차 경제 교육과정의 전문은 경제 과목이 지향하는 민주시민상으로 “시장경제의 경쟁 원리에 적응하여 효율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면서”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경쟁과 이기심뿐 아니라 협동과 호혜성 역시 경제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이란 점은 교과서에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현실에서는 연대의식에 바탕을 둔 협동조합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고, 사회적기업, 비영리기업 등 신뢰와 공동체에 기반한 ‘사회적 경제’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무한경쟁의 모순을 완화하는 대안으로 빠르게 대두되고 있다.

왜 경제 배우는지 근본질문 던지자

경제의 동력으로서 협동과 신뢰는 주변적이고 대안적인 경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에서 정보, 아이디어 등 무형자산의 비중이 커지고 네트워크화하면서 주변의 자발적인 협력을 어떻게 조직하느냐가 혁신적인 기업의 가치창출에서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244년 전통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굴복시킨 위키피디아의 집단지성은 “그저 남들에게 쓸모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평범한 호혜정신이 가장 큰 에너지였다.

무엇보다 지금의 경제교육은 왜 우리가 경제를 배우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곧잘 생략한다. 경제를 아는 것은 시장원리가 제시하듯 남과 비교해 부족함을 깨닫고 끊임없이 경쟁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경제는 세계 10위권인데 행복지수는 100위권이란 조사는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의 자녀들이 ‘개발과 환경보전’, ‘성장과 분배’, ‘경쟁과 협력’같이 현실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인간 행복이란 가치에 기반해 성찰할 수 있을 때 합리적 판단의 학문으로서 경제를 배우는 보람도 클 것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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