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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재계의 위기론에 또 잡히면…경제민주화는 ‘할리우드 액션’

등록 2012-08-12 20:30

진단과 전망 l 경제구조 개혁 가능할까
출자총액 제한·순환출자 금지 등에
기업 “경제 죽는다” 주장 앞세워 반격
역대정권, 지지율 하락에 결국 ‘백기’

기업 영역에도 민주주의 도입 위해
노동·금융 개선하고 대안기업 키워야

‘경제민주화’.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의 대선 유력주자인 박근혜 경선후보조차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강자독식’의 경제구조 때문에 내 지갑이 얇아지고,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며, 삶이 팍팍해진다는 데 어느 때보다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기세도 한풀 꺾인 마당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논의가 이번에도 ‘소문난 잔치’에 그칠 가능성은 적지 않다. 경제민주화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재벌 개혁인데, 강력한 힘을 가진 재계가 앉아서 당할 리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정과 공평을 추구하는 경제민주화 논의는 1980년대 말 노태우 정권부터 최근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의 단골 메뉴였다.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하청거래의 공정성 등 요즘 나오는 정책 처방들은 모두 한때 시도했다 ‘용두사미’가 됐던 것들이었다.

과거에 실패했으니 이번에도 못한다는 비관론은 물론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왜 과거에 경제개혁의 엔진이 맥없이 꺼져버렸는지는 차분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반격은 언제나 ‘경제위기론’에서 출발한다. “기업을 죄인시하고 기업가 정신을 꺾는 ‘설익은’ 경제민주화 정책이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간다. 경제단체, 학자, 연구소, 관료들이 한목소리로 비관론을 확대 재생산하며, 개혁보다 “당장 경제부터 살리라”고 외친다. 자고 나면 떨어지는 지지율에 초조해진 정권은 다가오는 재보선, 지방선거, 총선 등을 넘길 자신이 없어 개혁의 칼을 칼집에 넣는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던 길을 복기해 보자. 노 정권은 성장과 분배의 조화, 자본과 노동의 힘의 균형, 계층간 형평성 강화를 약속하며 출범했다. 증권집단소송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재벌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 및 출자총액제한제 유지와 같은 재벌개혁 조처도 제시했다.

이에 맞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며 대통령 취임 전부터 내놓고 반대했다. 재계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갈등은 당시 김석중 전경련 상무가 <뉴욕 타임스>에 “그들의 목표는 사회주의”라 했다고 보도되자 비등점으로 치달았다. 그럼에도 집권 초기 노 대통령 쪽은 “경제가 좀 악화되더라도 재벌과 타협하지 않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조처를 주저 없이 시행할 것”이라며 결의를 보였다.

하지만 이전 정권의 실책인 ‘신용카드 거품’이 노 대통령 집권 초에 터지며 2003년 봄부터 경기가 급격히 위축됐다. 개혁에 약간 관심을 보이던 언론의 논조는 초여름을 지나면서 ‘성장 타령’으로 급속히 바뀐다. 3월에 70%에 이르던 대통령 지지율은 넉달 뒤인 7월에는 40%로 주저앉는다. 이때 좌고우면하던 노 정권에 재계가 들이민 것은 ‘2만달러 국민소득’을 달성하자는 의제였다. 이는 삼성경제연구소가 만들어 인수위에 제출한 것으로, 이명박 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의 원형이었다. 이건희 회장 등 말발 강한 재벌 총수도 언론에 나와 추임새를 넣는다. 노 대통령은 결국 굴복하고 그해 8·15 광복절 축사에서 ‘2만달러 달성’을 정부의 국정의제로 채택한다고 선언한다. 이후 새 정부의 정책 노선은 개혁성을 급속히 잃고 친기업, 친성장으로 선회한다. “경제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노 대통령의 개혁의지는 6개월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정부 정책이 불만이라 기업이 손을 놓는 ‘투자 파업’이 가능한지 여부는 모르나, 위협만으로도 위력적이다. 그래서 국회에서 연일 발의를 약속하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도 대선 때까지만 살아 있는 ‘할리우드 액션’이 될 수도 있다. 미국적 다원주의 정치의 예찬자였던 로버트 달은 말년에 국가가 투자와 고용을 손에 쥔 대기업 경영자나 소유주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그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려면 경제와 기업 영역에서도 민주주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며, 노동자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자주관리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달의 통찰력은 정치학의 대가답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에 대한 규제뿐 아니라 노동 및 금융공공성 강화 같은 체질 개선과 함께 가야 하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같은 대안적 상상력과도 발을 맞춰야 한다. 집이 싫어 나왔으나 막상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대안이 없으면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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