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동 청구아파트 관리사무소 2층 문화센터에서 변영수 입주자대표(가운데)와 심상숙 부녀회 부회장(왼쪽 두번째)이 주민들과 함께 유용미생물(EM) 발효액을 포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99%의 경제
서울 노원구 중계동 청구3차 아파트
서울 노원구 중계동 청구3차 아파트
아파트 협동조합이 뜬다. 도시의 공동체가 살아난다. “2008년에 입주자 대표를 맡았어요. 엉망이더군요. 아파트 관리는 주먹구구이고, 주민 뜻이 들어설 틈은 아예 없었어요. 공동체가 무너졌으니, 이웃끼리 사소한 일로도 다투기 일쑤였죠. 문제는 신뢰였습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청구3차 아파트의 변영수(58) 입주자대표는 ‘신뢰’와 ‘공동체’를 연신 강조했다.
“때마침 부녀회가 새로 구성됐습니다.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함께 알아보자고 했지요. 단지 안에 독서실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맨먼저 나오더군요. 월 한 차례 회의공간으로 쓰이는 관리사무소 3층 공간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였죠. 일사천리로 결정하고 장기수선충당금에서 리모델링 비용을 빌려왔습니다. 우리 아파트의 ‘신뢰 다지기’ 출발이었습니다.”
2009년 83석 규모의 독서실이 문을 열자, 주민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처음에는 대기자가 100명에 육박했고, 지금도 30명 이상이 빈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독서실 방마다 공기청정기와 천정에어컨을 갖추고 바닥에는 따뜻한 온돌을 깔았다. 비데 화장실까지 갖춘 최고급 시설이지만, 한달 이용료는 주변의 반값에도 못미치는 월 7만원이다.
“제가 독서실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새벽 1~2시까지 기다렸다가 딸아이를 근처 독서실에서 데려와야 했거든요. 주민들이 너무 좋아해요. 이웃 아파트에서도 부러워하죠. 아이들 밤길 걱정 없고, 돈도 절약하잖아요. 그때부터 주민들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마음만 모으면 좋은 아파트 만들 수 있구나, 실감한 거죠.” 부녀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심상숙(49)씨는 ‘우리 아파트’ 자랑을 멈출 줄 몰랐다. “5명의 부녀회원들이 교대 근무로 독서실을 관리해요. 시급 4000원만 받고요. 우리 아이 보살피는 정성을 듬뿍 담지요.”
2008년 부녀회 모임이 시작
주민들 무엇을 원하는지
함께 알아보자 했다
관리사무소 3층에 독서실 만들자
83석 문여는 날 환호성 터졌다 공동체 사업으로 ‘죽죽’
주민들 사이 믿음 쌓이면서
세탁비누 만들어 녹색장터
아예 ‘마을기업’ 만들어
음식물쓰레기 퇴비 만드는 사업 환골탈태 아파트
으슥한 뒷공간엔 야생화·가로등
널찍한 빈터는 배추밭…
주민들 민원 반으로 줄었다
내달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 계획 주민들 사이에 쌓인 믿음은 공동체 사업으로 죽죽 뻗어나갔다. 이듬해인 2010년엔 유용미생물(EM) 발효액과 세탁비누를 생산해 팔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돌아가며 생산을 관리하고 녹색장터를 열었다. 2011년에는 아예 마을기업을 설립해, 유용미생물로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재생하는 사업에 들어갔다. 지난해에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2층을 마을 문화센터와 어린이도서관으로 새단장했다. 문화센터에서는 바리스타, 요가, 바둑, 요리, 공예와 아이들 보드게임의 6개 프로그램을 주 2~3차례씩 운영한다. 프로그램이 없을 때에도, 엄마들이 수다를 떠는 공동체 공간으로 북적거린다. 5000권 장서를 갖춘 어린이도서관도 늘 시끌벅적하다. “사무실 공간이 좁아졌지만 불편은 없어요. 죽은 공간이 주민들의 복합공간으로 살아났잖아요. 사람 냄새 나는 곳이 됐지요.” 강경석 아파트 관리소장은 “이웃간에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잦아지면서 주민들간의 민원도 월 10건 정도에서 5~6건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집안 싸움에 주민들이 나서는 ‘미풍양속’도 생겨났다. 가정 폭력이 너무 심하다 싶으면 주민 대표들이 함께 찾아가서 점잖게 타이른다는 것이다. 팍팍한 아파트 단지를 사람 사는 마을로 바꾸는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음식물쓰레기통이 들어가는 예쁜 집을 지어, 냄새 민원을 근원적으로 해소했다. ‘불량 청소년’들의 온상이던 으슥한 뒷공간을 야생화의 생태공원으로 꾸미고 멋진 가로등을 달았다. 많은 주민들이 텃밭상자에 도시 농사를 지어 이웃과 나눈다. 제법 널찍한 빈터는 배추밭으로 활용했다. 노인정의 김장 김치가 여기에서 공급된다.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는 아파트봉사단도 결성했다. 유용미생물을 섞어 만든 흙공을 근처 당연천에 던져넣어 모기를 퇴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청구3차 아파트 주민들은 올해 중대한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기존의 마을기업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2월 중에 설립인가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마을기업은 영리업체라서 우리와는 맞지 않아요. 우리 몸에 맞는 비영리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새로 태어날 겁니다. 전체 780가구의 10% 이상 주민들과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합니다. 음식물쓰레기로 만든 퇴비도 올해부터 구청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에 공급하게 됩니다. 매출이 지난해 1800만원대에서 4000만~5000만원으로 늘어나게 되죠. 주민 일자리도 1~2개 생기겠죠.” 변 대표의 꿈은 아파트 공동체의 완성이다. “사회적협동조합에서 로컬푸드와 그린푸드 사업을 벌이고 궁극적으로는 따뜻한 아파트 공동체로 만들어 나갈 겁니다. 우리가 퇴비를 공급한 농가의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아파트 생협도 꾸려보고 싶습니다.” 한편,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벽산아파트에서도 22일 주민 설명회를 갖고, 아파트 협동조합 설립 준비에 들어갔다. 사회적기업인 함께일하는세상의 이철종 대표는 “벽산아파트에는 고령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세차와 가사서비스 쪽에서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아파트협동조합 설립이 유효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청에서는 2월 중에 아파트협동조합 설립준비를 위한 주민 공개강좌를 열 계획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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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알아보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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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마을기업’ 만들어
음식물쓰레기 퇴비 만드는 사업 환골탈태 아파트
으슥한 뒷공간엔 야생화·가로등
널찍한 빈터는 배추밭…
주민들 민원 반으로 줄었다
내달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 계획 주민들 사이에 쌓인 믿음은 공동체 사업으로 죽죽 뻗어나갔다. 이듬해인 2010년엔 유용미생물(EM) 발효액과 세탁비누를 생산해 팔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돌아가며 생산을 관리하고 녹색장터를 열었다. 2011년에는 아예 마을기업을 설립해, 유용미생물로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재생하는 사업에 들어갔다. 지난해에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2층을 마을 문화센터와 어린이도서관으로 새단장했다. 문화센터에서는 바리스타, 요가, 바둑, 요리, 공예와 아이들 보드게임의 6개 프로그램을 주 2~3차례씩 운영한다. 프로그램이 없을 때에도, 엄마들이 수다를 떠는 공동체 공간으로 북적거린다. 5000권 장서를 갖춘 어린이도서관도 늘 시끌벅적하다. “사무실 공간이 좁아졌지만 불편은 없어요. 죽은 공간이 주민들의 복합공간으로 살아났잖아요. 사람 냄새 나는 곳이 됐지요.” 강경석 아파트 관리소장은 “이웃간에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잦아지면서 주민들간의 민원도 월 10건 정도에서 5~6건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집안 싸움에 주민들이 나서는 ‘미풍양속’도 생겨났다. 가정 폭력이 너무 심하다 싶으면 주민 대표들이 함께 찾아가서 점잖게 타이른다는 것이다. 팍팍한 아파트 단지를 사람 사는 마을로 바꾸는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음식물쓰레기통이 들어가는 예쁜 집을 지어, 냄새 민원을 근원적으로 해소했다. ‘불량 청소년’들의 온상이던 으슥한 뒷공간을 야생화의 생태공원으로 꾸미고 멋진 가로등을 달았다. 많은 주민들이 텃밭상자에 도시 농사를 지어 이웃과 나눈다. 제법 널찍한 빈터는 배추밭으로 활용했다. 노인정의 김장 김치가 여기에서 공급된다.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는 아파트봉사단도 결성했다. 유용미생물을 섞어 만든 흙공을 근처 당연천에 던져넣어 모기를 퇴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청구3차 아파트 주민들은 올해 중대한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기존의 마을기업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2월 중에 설립인가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마을기업은 영리업체라서 우리와는 맞지 않아요. 우리 몸에 맞는 비영리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새로 태어날 겁니다. 전체 780가구의 10% 이상 주민들과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합니다. 음식물쓰레기로 만든 퇴비도 올해부터 구청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에 공급하게 됩니다. 매출이 지난해 1800만원대에서 4000만~5000만원으로 늘어나게 되죠. 주민 일자리도 1~2개 생기겠죠.” 변 대표의 꿈은 아파트 공동체의 완성이다. “사회적협동조합에서 로컬푸드와 그린푸드 사업을 벌이고 궁극적으로는 따뜻한 아파트 공동체로 만들어 나갈 겁니다. 우리가 퇴비를 공급한 농가의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아파트 생협도 꾸려보고 싶습니다.” 한편,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벽산아파트에서도 22일 주민 설명회를 갖고, 아파트 협동조합 설립 준비에 들어갔다. 사회적기업인 함께일하는세상의 이철종 대표는 “벽산아파트에는 고령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세차와 가사서비스 쪽에서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아파트협동조합 설립이 유효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청에서는 2월 중에 아파트협동조합 설립준비를 위한 주민 공개강좌를 열 계획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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