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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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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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가 존경하는 선배가 주례 대신 사회를 맡고, 직장 동료들이 토크쇼에서처럼 그들을 재치있게 소개한다. 사회는 하객들 몇 분에게 축하 인사를 부탁한다. 갑작스레 지명된 하객들은 잠시 당황하지만 이내 진심어린 축하 인사말을 던진다. 신랑 신부는 혼인서약을 프레젠테이션 방식으로 한다. 스티브 잡스 뺨치는 신랑의 프레젠테이션 발표 실력과 신부의 가슴 뭉클한 약속의 글이 하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축가와 연주에 이어 신랑이 준비한 답가를 한다. 수준급의 노래솜씨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신랑의 진지함에 신부는 물론 많은 여성 하객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시청 별관 후생관 ‘소담’에서 사회적기업과 함께하는 색다른 결혼식이 열렸다. 옛 직장 동료인 신랑 신부는 13년간의 인연을 평생의 동반자로 결실을 맺었다. 그들의 결혼식은 작은 발표회 같았다. 사회적기업 전문 기자인 신부는 직접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결혼식 기획과 진행은 착한 잔치를 만드는 마을공동체 ‘품애’가 맡았다. 품애는 마을기업이자 예비 사회적기업이다. 종로를 중심으로 중구, 서대문 등 인근 지역 여러 단체의 네트워크이다. 주민 결혼식, 어르신 회갑연부터 공동육아와 마을학교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품애는 결혼식이 신랑 신부에게 형식적인 날이 아니고 평생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행복한 날이 되도록 그들이 원하는 예식 방식에 대해 충분히 듣고 방법을 일러 준다. 공공기관의 시설을 식장으로 이용해 예식비용도 30% 이상 줄일 수 있도록 해준다.
축가와 신랑의 답가 연습을 도운 유유자적 살롱(유자살롱)은 ‘마음의 병은 자고로 놀아야 낫는다’며 음악으로 뭉친 젊은이들의 사회적기업이다. 학교와 사회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무중력 청소년’들을 음악으로 치유하고, 직장인들에게는 생활음악을 즐겁게 가르친다. 평소 노래방에서 목소리가 컸던 신랑에게도 하객들 앞에서 축가를 부르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유자살롱과 2차례 8시간에 걸쳐 연습하면서 신랑 스스로 마음의 치유를 받았다고 한다. 결혼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지 못했던 위안을 덤으로 얻은 셈이다.
신부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피로연 음식에 가장 신경을 썼다고 한다. 사회적기업 오가니제이션요리에서 운영하는 슬로푸드 레스토랑 카페슬로비가 음식을 맡았다. 카페슬로비는 친환경 음식재료로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내놓았다. 뷔페 음식보다 가짓수는 적었지만 더불어 함께 하려는 신랑 신부의 진심이 담긴 최고의 성찬이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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