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K2 전차’를 만드는 에스앤티(S&T)중공업 회장으로 부임한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은 ‘창조경제’를 위해 대통령이 우선 해야 할 일로 ‘노동조합과의 타협’을 들었다. 직장에 신바람을 불어넣을 때 창의력도 생긴다는 것이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배순훈 ‘에스앤티중공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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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 넣어야 창의력 생겨 -그렇다면 창조경제와 지식사회를 말하는 요즘,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일까? “정부의 역할은 국민이 창조경제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부가 창조를 하는 게 아니다. 정보화 얘기할 때를 예로 들어보자. 그때 예산을 들여 도서관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고, 학교 교육도 해서 정보화 관련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그때 배운 사람들이 지금의 정보통신업체들을 키워냈다. 창조경제도 뭔가 젊은 사람들에게 일감에 도전할 만한 것을 정부가 줘야 한다.” -정부가 직접 땅을 파거나 사업을 하기보다 지원을 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는 얘기 같다.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라고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 -그러면 박근혜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노조와 타협을 하는 것이다.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임금 올릴 것은 올리는 것이다. 물론 고연봉을 받는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 재벌 총수들에게 얘기해서 ‘당신 개인 돈이라도 풀어’라고 해야지.” -가능할까. 박근혜 정부의 정책엔 노조와 타협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타협이 안 될지 모른다. 다음 대통령이라도 정식으로 타협해야 한다. 실업자가 250만명인데, 창조경제로 어떻게 좋은 일자리 250만개를 만드나. 이 정부에서 열심히 하면 20만~30만개는 생길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시킨다고 해서 만들지는 못한다. ‘산업현장에서 해보자’ 동기 유발이 되어야지. 노조하고 타협해서 노동자가 국가를 위해 열심히 하겠다 이렇게 돼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시절에 배 회장이 독일 미술계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미술관장 하던 감성으로 도울 생각 -창조경제지만, 노사협력 등 결국 산업현장에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얘기 같다. “맞다. 기본적인 것부터 잘해야지. 직장에 신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게 창조경제다. 남과 같은 것을 잘 만들자는 게 아니라 남이 못 만드는 것을 잘 만들어야 한다.” 배 회장의 산업현장 중시는, 그가 다시 현업으로 돌아온 밑바탕이기도 해 보인다. 배 회장은 공학한림원에서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방문단을 꾸려 갈 때 윤종용 삼성전자 전 부회장의 권유를 받아 함께 갔다고 한다. 마침 이때 에스앤티중공업에서 강의를 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았다. “에스앤티그룹의 최평규 회장이 나하고 인연이 있었다고 하더라. 최 회장이 신입사원 때 회사에서 배순훈 박사를 찾아가 열전달에 대해서 배워라 하고 보냈다는 거야. 처음엔 기억이 안 났지만, 당시에 열교환기를 만들고 있었지. 그때 본 것 같더라고.” -그 인연으로 회장직을 맡았나? “에스앤티가 하는 트랜스미션 시장은 지난 50년 동안 소수 회사가 과점하는 시장이다. 누가 들어가서 성능이 10% 좋다거나 가격이 싸다고 해도 바꾸지 않는다. 신용이 있어야 하는 시장이다. 우리 공장 엔지니어들 만나보니 잘한다. 이런 실력을 누가 알아줘야 하는데, 그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내가 최 회장한테 이 사람들 능력을 팔고 싶다고 했다. 고문을 할까 하다가 이왕 할 거면 회장이 좋겠다 했지. 그래서 일단 일년으로 계약했다. 봉급도 일체 안 받는다.” -에스앤티중공업이 좋은 기술이 있어도 회장님이 나서서 마케팅할 게 있다는 얘기 같다. 예전엔 불필요한 포장이나 광고 대신 기능에 충실하게 만든다는 ‘탱크주의’로 이름을 날렸는데, 생각이 좀 바뀌었나? “히든챔피언이 되려면 많이 팔려야 한다. 소비자는 써보고 좋으니까 사는 게 아니라 좋을 것 같으니까 산다. 그러니 좋을 것처럼 보여야지. ‘우리는 탱크주의입니다. 고장이 안 납니다’라고 했다가 품질이 나쁘면 소비자가 사기 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잘 만들어야 한다. 당시 대우전자 안에는 패배주의가 있었다. ‘세탁기 품질 잘합시다’ 이렇게 아무리 얘기해도 별로 느끼질 못한다. 그런데 탱크주의가 잘나가니까 회사 안에 잘해야겠다는 게 퍼졌다. (나는) 달라진 게 아니다.” 배순훈 회장의 복귀는 단순히 산업만을 향하지 않는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을 그만둔 뒤 외국을 돌며 미술작품 구경을 했다고 했다. 그의 감성은 에스앤티중공업의 공장이 있는 창원까지 품고 있었다. “창원엔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다. 그냥 기계공업이 잘 발전했을 뿐이다. 도시계획이 잘됐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아직 대폿집에는 안 가봤지만, 창원에도 문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 도와주면 좋겠다 싶었지.” 그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냈다. 배 회장의 경력에서 다소 이채로운 대목이다. 서울 경복궁 옆 옛 국군기무사령부 자리에 서울관을 적극 추진했던 그는 2011년 10월 사직서를 냈다. 김우중 전 회장과 가끔 만나면
“국외서 한국 발전 가르쳐라” 말해 -당시 그만둔 것은 국회에 출석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답변하는 것을 놓고 국회의원과 설전을 벌인 것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빌 게이츠가 와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났을 때) 악수하는 것을 보니,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하더라. 하하. 미술계의 많은 사람들이 배순훈이 관장 하는 것을 두고 미술계 출신도 아닌데 그 아까운 자리를 차지했냐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미술관장을 3년 하니까, 내가 후배들이 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문제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국회에서도 그런 일이 생긴 거고….” 배 회장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대우전자 회장 시절 ‘탱크주의’ 광고를 찍은 덕분이다. 그는 유명해졌지만, 대우그룹은 외환위기 뒤 해체 수순을 밟았다. 당시 대우전자 대표로 있던 그는 계열사에 섰던 빚보증이 부메랑으로 날아왔다. 당시 선 보증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됐고, 지금도 은행에 수백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재임 때도 월급의 절반을 은행이 가져갔다. -삼성과 대우 등 기업의 빅딜을 반대해 정통부 장관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10여년간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학자적 입장에서 아이엠에프(IMF)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연구했다. 재무적으로는 한국 경제가 튼튼해졌다 할지 몰라도, 구조조정을 통해 일자리는 엄청 없어졌다. 나중에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이 책을 썼는데, 한국의 구조조정은 너무 심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그런 아쉬움이 있다.” -대우그룹도 해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가면 좋았을까? “당시 그룹을 해체하지 말고 주인만 바꾸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경영진을 바꾸더라도 대우는 살아난다고 했지. 하지만 김우중 회장은 진짜 이런 식으로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다. 김 회장이 카리스마도 있어서 이헌재씨나 강봉균씨한테 강력하게 이야기를 하니, 이 사람들이 (그대로 가는 건) 안 되겠다 생각한 것 같다.” -김우중 회장과 가끔 보시나? “가끔 뵌다. 지난해 김 회장님이 희수(77살)연에서 예전 임원들을 만나 ‘하루 종일 골프 치면 재미있어? 일을 해야지’라고 말하더라. 임원들이 그랬지. ‘일이 있어야죠. 전부 신용불량자예요.’ 그러니까 김 회장이 ‘베트남도 좋고 동남아도 좋고 한국의 발전을 배우고 싶은 데가 얼마나 많은데. 나가라’고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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