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5일 충남 공주에서 열린 ‘협동조합과 지역사회 발전’ 국제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이 “협동조합이 지역사회가 필요한 욕구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푸는 해법을 내놓을 수 있다”는 내용의 토론을 하고 있다. 충남발전연구원 제공
협동조합과 지역사회 발전
단체장의 투자 유치 실적에
솔깃해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지역민 생활현장에 밀착한
새로운 지도자상 필요하다 참여·협력하는 협동조합이
수준높은 자치 실현 밑거름
지역개발도 조합간 연계하면
주민에게 고루 혜택 돌아간다 지방선거가 일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새로운 유형의 지역 리더십이 관심거리일 것이다. 협동조합 등 최근 생활 현장에서 솟아나는 열기를 지역문제 해결과 발전의 동력으로 이끄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충남발전연구원(원장 박진도)과 함께 사회적 경제 시대에 지역의 새로운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국제콘퍼런스를 열었다. 5일 충남 공주에서 개최된 ‘협동조합과 지역사회 발전’ 콘퍼런스에는 잔루카 살바토리 이탈리아 유럽협동조합·사회적기업연구소(EURICSE) 소장, 제라드 페롱 캐나다 퀘벡주 지역개발협동조합 전 국장, 사와구치 다카시 일본 시민섹터 정책기구 이사장, 송두범 충남발전연구원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이 발표를 했다.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다. 그 결과 수백억 달러의 투자 양해각서를 맺어 왔다”는 것이 자치단체장의 단골 자랑거리이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 전 일이지만 이젠 이런 치적을 내세우면 주민들은 시큰둥해한다. 외자유치 실적은 부풀려지기 일쑤였고, 실제 투자가 이뤄진다 해도 고용이나 세수 증대에서 기대와 달리 효과는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이후 지역의 새로운 리더십은 좀더 지역민의 생활 현장에 밀착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바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같이 사회적 경제를 지역 발전과 접목하는 것이 지역 지도자들의 새로운 과제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법이 발효된 뒤 불과 6개월 만에 전국에 12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마을만들기 등 지역사회의 자활과 협동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지방자치 활성화와 발전의 동력으로 엮어 낼지는 고민이 필요한 과제다. 120년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트렌티노의 협동조합 사례를 소개한 살바토리 소장은 협동조합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높은 수준의 자치를 실현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밝혔다. 협동조합과 지역자치는 ‘찰떡궁합’이란 얘기인데, 참여와 협력의 협동조합 정신이 지역자치를 살찌우고, 이는 다시 사회적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북부 척박한 산간지역에 있는 트렌티노는 1800년대 후반만 해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으나 협동조합이 활성화되면서 지금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연합 내에서도 잘사는 지역이 됐다. 주민 52만4000명 중에 협동조합원이 27만명이다. 이 지역 고용의 14%, 지역 총생산의 15%를 협동조합이 차지한다. 트렌티노는 1946년부터 3단계에 걸쳐 중앙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이양받아 폭넓은 입법 및 행정권을 행사하는 자치지역이 됐다. 살바토리 소장은 이런 권한위임이 먼저가 아니라 협동조합이 발달하며 생긴 자치역량과 끈적끈적한 사회적 유대가 수준 높은 자치를 이끌어냈다고 말한다. 올해 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거주하는 동네에는 21%, 자신이 거주하는 시에는 28%의 소속감을 느끼는 데 반해 국가에 대해서는 10%, 지역(광역단체에 대당)에 대해서는 11%로 소속감이 약했다. 살바토리 소장은 협동조합을 늘 지역개발과 관련지어 생각하고, 협동조합으로 얻은 자율성을 공공제도로 연결해 낼 것을 권고했다. 그는 “협동조합은 늘 변화하는 조직이란 생각이 필요하다”며 협동조합의 혁신을 잊지 말 것을 주문했다. 페롱 전 국장은 사회적 경제의 발전을 지역발전으로 연결시키는 데도 협동조합을 활용한 캐나다 퀘벡주의 성공 경험을 소개했다. 지역개발협동조합(Regional Development Cooperatives: RDC)은 협동조합의 협동조합으로 퀘벡주에 11개가 있다. 아르디시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역 내 서로 다른 협동조합들이 공동의 지역 목표를 달성하는 데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무엇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수많은 회합과 토론을 통해서 발굴하고 공유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동의가 이뤄지면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또다른 협동조합을 만드는데, 이 역시 아르디시가 주도해서 지원한다. 한 예로 1990년대 이래 퀘벡 지역에서는 집에 누워 있는 고령자나 장애인을 돌보는 개호서비스가 상당수 협동조합원들의 관심사였다. 이에 따라 아르디시 주도 아래 은행, 보험, 식품, 유통같이 발전된 부문의 협동조합이 힘을 합쳐 12개의 개호서비스협동조합이 만들어지도록 도왔다. 그 결과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주민들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고, 1000개 이상의 지역 일자리도 창출됐다.
협동조합 선진국인 이탈리아나 캐나다와 달리 일본이나 한국은 지역개발과 협동조합의 연계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란 평가가 나왔다. 일본에는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선정하는 ‘글로벌 300’에 13개 협동조합이 들어갈 정도인데다, 동일본대지진 직후 일본의 협동조합들은 2조원이 넘는 경제적 지원을 하고 거의 반년 동안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고립된 난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일을 하는 등 외견상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사와구치 이사장은 “이런 것을 일본인 거의 대다수가 잘 모른다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협동조합이 이런 활동뿐 아니라 본연의 사업을 통해 공동체나 지역사회에 녹아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충발연 송두범 박사는 “충남 도민의 60% 이상이 조합원일 만큼 개인적으로 협동조합과 긴밀하게 얽혀 있지만, 지역사회 발전 수단으로의 활용은 미흡한 상태”라며 “(농협 등) 기존 협동조합은 정체성이 미약하고 새로 생겨난 협동조합은 비교적 영세한 것도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협동조합으로 조성된 문화가 지역의 자치역량을 높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고, 지역과 연계를 확대하기 위해 퀘벡에서와 같이 협동조합의 협동을 돕는 중간 조직도 협동조합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책임투자 강제 않는 대신 ‘ESG’ 공시 의무화해야
국민연금 책임투자 법제화 토론회
국민연금은 올해 3월 말 현재 405조9000억원의 자산을 가진 세계 3위 연기금이다. 사회책임투자 리서치 기관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 국민연금의 위상을 보편적 소유주(Universal Owner)로 규정한다. 보편적 소유주란 연기금 등과 같이 모든 산업에 걸쳐 주식을 장기보유하고 있는 대형 투자기관을 일컫는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6월 기준으로 국내 전체 상장기업 중 567개 기업에 투자하고 있고, 이 중 182개 기업은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다. 성과는 코스피(KOSPI)와 사실상 연동된다.
2일 국회에서 민주당 이목희 의원실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유엔글로벌콤팩트한국협회가 ‘국민연금기금의 책임투자와 공시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는 국민연금의 큰 힘에 따른 막중한 책임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어떻게 기금의 수익률을 보장하면서 투자를 바람직한 가치와 조화시킬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법적 근거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선문대 곽관훈 교수(법학)는 “국민연금법에 책임투자 관련 공시 조항을 규정함으로써 투명성·책임성·수익성·공공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즉 기금을 관리·운용하는 경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요소 등을 고려하도록 하고, 만일 고려하지 않는 경우 그 이유를 공시하도록 국민연금법에 명문화하자는 방안이다. 책임투자는 선택 사항이지만 책임투자의 고려 요소인 이에스지와 관련한 공시는 필수 사항으로 하자는 것이다. 모범 규준을 따르거나 이유를 설명하라는 말이다.
이목희 의원이 발의할 국민연금의 이에스지 공시를 뼈대로 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영국·독일·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 등 이미 법제화된 선진국 사례를 검토해서 만들었다. 이 의원은 꼭 입법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국민연금이 기금 운용 때 이에스지를 고려하고 투자 규모를 확대하자는 방향에 대해 토론자들은 대체로 공감했다. 1200개에 이르는 금융회사들이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에 동참할 정도로 책임투자는 주류가 됐다. 국민연금도 2009년에 가입했고, 지속가능성보고서에서도 책임투자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국민연금기금의 책임투자를 간접적으로 촉진하는 이에스지 공시 의무화에 대해서 이견은 크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국 양성일 국장은 이런 방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책임투자가 시작 단계인 점을 고려해 지속적 논의와 제도적 기반 마련이 먼저다. 사회책임투자(SRI) 분류와 기업 편입과 배제 기준, 공시 등 사회책임투자 틀을 만드는 데 금융위원회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런 절차는 일단 이 법이 통과된 뒤에 필요한 과정이다. 이에스지 평가 주체와 평가 방법, 고려 요소의 범위 설정, 공시 등 구체적 난제들은 금융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금 운용의 이에스지 고려 공시가 현실화될 경우 공시 부담을 느낄 최일선 기관은 국민연금기금을 위탁운용하고 있는 자산운용사다. 그럼에도 엔에이치시에이(NHCA) 자산운용 홍정모 과장은 “에스아르아이 유형 위탁운용사와 장기투자형 운용사들의 리서치 스펙트럼을 좀더 넓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라며 찬성 의견을 밝혔다.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 최광림 실장은 기금 운용의 이에스지 공시가 기업의 공시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향후 논의 과정에서 기업의 의견 수렴을 주문했다.
국민연금의 에스아르아이 규모는 올해 3월 말 기준 5조5000여억원이다. 국민연금은 한국에서 에스아르아이를 이끄는 기관차 구실을 하고는 있지만 선진 연기금에 비해 양적·질적으로 미약한 수준이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강동호 상무와 이에프컨설팅 임대웅 상무는 기금 운용의 이에스지 고려 공시 그 자체만으로도 책임투자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도 2000년 7월 개정 연기금법이 발효된 이후 에스아르아이 규모가 급속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임 상무는 국민연금의 책임투자는 주식만이 아니라 채권·대체투자 등 모든 자산운용 범주로 확대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유엔책임투자원칙의 제1원칙이기도 하다. 기금 운용의 이에스지 고려 공시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통해 안정성과 수익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본질적인 원칙에 부합한다.
또 정보개방과 공유 행정 확대를 추진하는 박근혜 정부의 ‘정부 3.0’에도 부응한다. 아울러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과 투자의 명확한 고리를 증명해 줌으로써 가장 시장친화적으로 시에스아르를 촉진시켜 경제민주화에도 기여한다. 국민연금은 이처럼 자신의 기금운용에 충실하면서도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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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의 책임투자와 공시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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