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외국쌀 수입량
자잘하게 혼합비 표기해 법 우회
소비자 깜빡 속고, 농민들도 피해
“연말 쌀시장 개방 전에 서두르자”
야당 의원들 양곡관리법 개정 발의
정부는 통상마찰 우려 신중한 태도
소비자 깜빡 속고, 농민들도 피해
“연말 쌀시장 개방 전에 서두르자”
야당 의원들 양곡관리법 개정 발의
정부는 통상마찰 우려 신중한 태도
주부 이진경(30)씨는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 20㎏짜리 쌀 한포대를 샀다. ‘토종쌀’을 짐작케하는 그럴듯한 제품명과 ㄱ영농조합법인 로고가 포대 앞면에 찍혀있어 당연히 국내산 쌀로 생각했다. 품질표시 사항의 원산지 항목에도 국내 지명이 적혀 있었다. 품종 항목에 ‘혼합’이란 표시가 눈에 걸렸지만 별 생각없이 넘겼다.
며칠 뒤 우연히 포대 뒷면의 작은 스티커에 적힌 글씨를 본 이씨는 깜빡 속았다는 생각에 불쾌했다. 국내산 쌀 비율은 5%도 안되고, 호주산 쌀이 80%를 차지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나머지는 국내산 찹쌀이었다. 이씨는 품종 항목에 찍힌 ‘혼합’이란 단어가 문득 떠올라 ‘아차’ 싶었다.
쌀을 살 때 품질표시사항을 꼼꼼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포장 가운데 크게 찍힌 유명 쌀 생산지명을 보고 고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수입쌀이 섞인 혼합쌀을 국내산 쌀로 착각하고 구입하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
혼합쌀이 국내산 쌀인냥 판매되는 문제는 쌀 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2005년 밥쌀용 수입쌀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나타났다. 현재 국내산 쌀과 수입쌀은 원산지와 혼합비율만 표시하면 섞어서 시중에서 판매할 수 있다. 미국산, 호주산, 중국산 쌀 등이 혼합쌀의 ‘주원료’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현행 법의 허점상 표시를 허술하게 할 소지가 커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또 관련 법을 위반해도 처벌 수위가 낮아 아예 거짓으로 표시하거나 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런 왜곡된 수입쌀 유통질서를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 3월 배기운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대표 발의한 양곡관리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보면, 양곡을 가공하거나 판매하려는 사람은 혼합된 양곡의 원산지와 생산년도, 혼합비율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포장과 용기 등의 전면에 표시하도록 하는 새 조항이 들어 있다. 또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처벌조항도 넣도록 했다. 수입쌀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비슷한 다른 법안들도 여럿 발의된 상태다.
박주선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등은 올해 말로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이 만료될 예정인 점을 감안해 국회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오는 9월까지 관세화(쌀시장 개방) 여부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하고 회원국의 동의를 받는 절차에 나선다. 9월 이전에 개정안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국가가 이 법안 조항을 문제삼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통상마찰 위험이 있다며 신중한 태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박주선 의원실에 보낸 답변서에서 “양곡혼합 금지 규정이 국내산 양곡에 비해 외국산 양곡의 경쟁 조건을 구조적으로 불리하게 만드는 경우 세계무역기구 규범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농림부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해 박 의원실에 낸 법률자문의견서를 보면 ‘수입쌀 판매 자체를 제한하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혼합쌀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위반이 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돼 있다. 대만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혼합쌀의 판매를 금지하는 쪽으로 관련법 개정을 추진중이고, 대형 유통업체들이 이미 혼합쌀 판매를 중단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