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들리니?”
“네.”
“선생님 목소리 들리면 손 한번 흔들어줘.”
지난 13일 서울 세종대로 한화생명빌딩 12층 북카페.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제주·충남 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원격화상 진로 멘토링’ 수업이 열렸다. 주제는 ‘광고디렉터의 세계’. 이종헌 한컴 광고디렉터가 컴퓨터용 헤드셋을 쓰고 긴장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학생들은 교실 모니터를 통해 이 디렉터를 마주했다. 이 디렉터 옆에서 사회를 본 임재희 어린이재단 선생님 인삿말이 수업 시작을 알린다. “오늘 멘토를 만나보겠습니다.”
한화그룹은 올해 4월부터 제주도 10개, 충남 5개 중학교에 원격 화상으로 ‘진로 멘토링’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대상은 직업 관련 정보를 얻기 힘든 농산어촌 학생들. 멘토와 학생들을 연결하는 도구는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이다. 한화 에스앤시(S&C)가 사회공헌 차원에서 개발했다.
이 디렉터의 강의는 1학기 마지막 수업이었다. 지난 4월4일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아동심리치료사, 원예사, 바리스타, 야구단 매니저 등 한화그룹 계열사 소속 9명이 한명씩 멘토로 나섰다. 이 디렉터는 ‘10번 타자’로 나섰다.
“질풍노도의 중학생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할지 모르겠어요.” 수업 전 걱정이 가득했던 이 디렉터는 수업이 시작되자 광고디렉터는 무엇을 하는지,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차분히 설명해 나갔다. 이어진 질문 시간. 학생들은 ‘광고 한편의 제작 비용은 얼마인가’ 등 궁금증을 쏟아냈다. “인기있는 프로그램과 인기 없는 프로그램 사이 광고 단가는 왜 다른가요”라는 질문엔 “좋은 질문”이라며 이 디렉터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돌발질문도 나왔다. “돈은 잘 버나요?”(제주 대정중 학생) “돈을 보고 직업을 갖지는 않았어요. 광고가 좋아서 했어요. 연봉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아요.”(이 디렉터)
수업을 마친 뒤 이 디렉터는 “학생들이 광고 만드는 일을 직업이라고 생각할까 싶을 정도였는데 막상 수업을 해보니 생각보다 질문 수준이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질문을 많이 해주니 힘이 덜 들었다”며 “평소 초등학교 6학년인 딸과 말이 잘 안 통해 걱정했는데 학생들이 설명을 잘 알아 듣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연봉을 묻는 질문이 가장 당황스러웠다. 강의만 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받으니 더 어렵다. 지루할 걸로 예상했는데 시간이 빨리 갔다”고 말했다.
이 디렉터는 멘토 제안을 받았을 때 선뜻 동의했다. 그는 “문화 혜택을 받기 어려운 농산어촌 청소년들에게 진로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취지가 좋았다. 내가 하는 일을 궁금해하는 학생들에게 소개해줘서 뜻 깊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9월5일부터 2학기 수업을 다시 시작한다. 2학기에는 다른 직업군의 멘토들을 새로 뽑을 예정이다. 멘토와 학생들의 현장 만남도 계획하고 있다. 원격화상 진로 멘토링 사업을 기획한 김정미 한화사회봉사단 매니저는 “진로 멘토링 수업에서 학생들은 한 학기 10개의 다양한 직업군을 간접 체험한다. 스스로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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