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수 선임기자.
현장에서
대기업의 무분별한 중소기업 업종 침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시행 3년째인 올해 중대한 고비를 맞는다. 2011년 처음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84개 품목에 대한 재지정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때맞춰 전경련이 17일 ‘적합업종 제도가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애초 도입 취지와는 달리 성장성·수익성은 물론 경쟁력 확보에도 실익이 적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언론들은 일제히 전경련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적합업종 제도 중소기업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전경련은 사실상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해왔다. 전경련으로서는 이번 보도자료로 큰 성과를 거두게 됐다.
보도자료는 두 명의 대학교수가 전경련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토대로 했다. 교수들은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적합업종 제도가 중소기업 경영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자구노력에 대한 기여 효과도 적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소기업 전문가들은 전경련 발표나 보고서 내용이 적합업종 제도와 관련해 사실과 다른 과장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올해 적합업종 재지정 대상 품목은 모두 82개다. 품목당 해당 중소기업 수는 많게는 수천개부터 적게는 수십개에 달해 전체 해당 중소기업이 수만개에 이른다. 하지만 보고서의 분석대상 품목은 53개에 그치고, 분석대상 중소기업도 1258개에 불과하다. 품목당 24개꼴이다. 한 예로 두부와 떡(제조도매) 품목의 경우 해당 중소기업이 각각 1500개를 넘는다. 분석기업이 전체 대상기업의 1%를 겨우 넘는 수준인 셈이다.
또 적합업종 지정 전후 해당 중소기업의 성장성·수익성 지표 하락폭이 전체 제조중소기업에 비해 더 크다는 보고서 내용도 의문을 자아낸다. 보고서 스스로 적합업종 지정과 중소기업의 성장성·수익성 악화 간의 인과관계 분석 결과 매출액증가율, 총자산순이익률, 자기자본이익률, 영업이익률 등 대다수 지표는 통계적 유의성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 관련 5개 지표 중에서도 4개가 통계적 유의성이 없었다. 통계적 유의성이 없다는 것은 분석결과가 단순한 우연일 수 있어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박사는 “전경련은 분석내용을 신뢰할 수 없는 보고서를 토대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실효성이 없다는 과장된 주장을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이 언론의 무지를 이용해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연재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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