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직원한테서 승진 청탁 대가로 향응을 받은 한국전력 고위 간부들이 정직 1개월의 솜방망이 징계 처분을 받은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이들 가운데는 직원들의 직무감찰을 총괄하는 감사실장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받은 ‘연도별 비리 적발 및 처분 현황’ 자료 등을 보면, 현아무개 관리본부장과 서아무개 감사실장, 신아무개 인사처장은 지난 2월18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호텔 지하 술집에서 부하 직원인 이아무개씨한테서 승진 심사를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향응·금품을 제공받았다. 이들은 모두 공무원 1급에 해당하는 직급으로, 당시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이 현장에서 이를 적발했다. 당시 이씨가 뇌물로 건넨 현금 100만원도 확보됐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이들에 대해 담당 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추가 조사와 조처를 요구했으며, 이들은 현재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한전이 지난 6월 징계 처분한 내용을 살펴보면, 현 관리본부장만 해임하고 서 감사실장과 신 인사처장에게는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들 3명 모두 인사 청탁의 대가로 향응 80만원을 받고 언론보도로 인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이 인정됐으나, 현 관리본부장은 추가로 금품 200만원을 수수하고 상품권을 부정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중징계 조처를 내렸다는 것이다.
한전은 내부 직원의 직무상 비위 사실이 적발되면 인사규정에 따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징계에는 견책, 감봉, 정직, 해임, 파면 등이 있다.
특히 감사실의 최고 책임자가 비위에 연루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한전의 도덕적 해이를 꼬집는 목소리가 나온다. 감사실장은 소속 직원들의 직무감찰과 비위 직원에 대한 조사, 반부패 및 공직기강 점검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김제남 의원은 “직무감찰을 하는 감사실장까지 비위에 연루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동안 징계 처분 현황을 보면 횡령이나 협력사 금품수수 등으로 수사기관에서 기소된 경우에도 정직 처분을 하는 등 견책, 감봉, 정직이 대부분이다. 매년 비리 적발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다. 공무원의 직무 관련 비리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엄격하게 징계 처분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서 감사실장과 신 인사처장은 단순히 동행해 그 자리에 나갔다가 적발된 측면이 있다. 그동안 관례에 비춰 보면 이들의 비위에 대해 정직 1개월을 내린 것도 중징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올해 공직기강을 강력하게 바로잡는 분위기 속에 해임 조처 등을 포함해 이례적으로 강경 방침을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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