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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3000만건 발급된 ‘디지털 인감’…전자상거래 ‘열쇠’에서 ‘족쇄’로

등록 2014-08-20 20:37수정 2014-08-21 13:40

지난 3월20일 오후 청와대에서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가 열리고 있다. 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이 국내 전자상거래에서는 공인인증서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문제점 때문에 중국인들이 이른바 ‘천송이 코트’를 구매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공인인증서 폐지가 규제개혁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3월20일 오후 청와대에서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가 열리고 있다. 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이 국내 전자상거래에서는 공인인증서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문제점 때문에 중국인들이 이른바 ‘천송이 코트’를 구매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공인인증서 폐지가 규제개혁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5년만에 퇴장하는 공인인증서

1999년 전자문서용으로 개발
대세 따라 MS 익스플로러 기반
인터넷뱅킹·쇼핑에서 사용 폭증
2006년 모든 전자상거래로 확대

환경 바뀌며 되레 사용자 제한
인증서 못받는 외국인 거래못해
지난 5월 규제개혁회의서 지적
이달말부터 대체수단 첫선 예상
지난 5월 금융위원회는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규칙을 개정해 전자상거래에서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를 폐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월 규제개혁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이른 바 ‘천송이 코트 문제’를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카드사 등은 이르면 이달 말부터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수단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함께해온 전자상거래와 공인인증서가 드디어 결별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공인인증서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9년 전자서명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인터넷이 막 확산되려는 초창기였다. 인터넷을 통해 전자문서를 주고받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데, 이 문서가 저 사람이 보낸 게 확실한지, 위변조된 것은 아닌지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디지털 인감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공인인증서가 개발됐다. 홍진배 미래창조과학부 정보보호정책과장은 “당시 디지털 서명에 대한 국제표준이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표준을 채택하면서 전자서명법을 제정했다”고 말했다.

공인인증서를 전자상거래에 가장 먼저 이용한 것은 은행들이었다. 몇몇 은행들이 2000년부터 인터넷뱅킹에서 통장과 신분증을 대신할 본인확인 수단으로 공인인증서를 채택했다. 곧이어 인터넷뱅킹에서 공인인증서 사용이 의무화됐다. 2003년부터는 인터넷쇼핑몰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에도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물건을 보지 않고 먼저 결제를 해야 하는 전자상거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으니,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해 신뢰도를 높이면 전자상거래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생각이었다. 결국 2006년 30만원 이상의 모든 전자상거래에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하는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규칙이 마련됐다.

이후 전자상거래 이용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하지만 인터넷 환경이 바뀌면서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됐다. 처음 공인인증서가 도입될 때만 해도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자의 절대 다수가 브라우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익스플로러를 사용했다. 자연스럽게 공인인증서를 구동시키는 시스템도 인터넷익스플로러를 기반으로 만들었고, 인터넷익스플로러만의 응용프로그램 설치·동작 지원방식인 액티브엑스(ActiveX)를 사용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인터넷익스플로러가 아닌 다른 브라우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었고, 이들 브라우저에서는 액티브엑스 기반의 공인인증서를 구동시킬 수 없어 전자상거래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 국내 인증기관으로부터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없는 외국인이 국내에서 전자상거래를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도 제기됐다. 또한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하는 바람에 업체들이 새로운 기술방식을 개발하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비판도 컸다.

시민사회단체와 인터넷 업계에서 수년 동안 이런 비판을 해왔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지적하고나서야 금융위원회는 곧바로 법규를 고쳐 전자상거래에서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를 폐지했다. 현재 국내 공인인증서 발급 건수는 약 3000만건에 이른다. 전 국민의 3분의 2 가량이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은 셈이다. 대부분 인터넷뱅킹과 전자상거래를 위해 발급받은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르면 이달 말부터 에이아르에스(ARS) 인증이나 에스엠에스(SMS) 인증 등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인증수단과 간편 결제를 선보일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공인인증서 사용자는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된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규칙에서도 30만원 이상의 온라인 계좌이체는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도록 했지만, 금융권에서 새로 도입하는 새로운 인증수단이 안정화되면 이마저도 폐지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액티브엑스를 사용하지 않는 공인인증서 이용 기술을 이달 안에 개발해 다음달부터 보급할 예정이지만, 금융권에서 현재 사용중인 다른 보안 프로그램들 역시 액티브엑스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곧바로 적용할 수 없는데다 새로 도입될 다른 간편결제 수단에 비해 별다른 이점이 없기 때문에 널리 사용될 가능성은 낮다. 미래부 홍진배 과장은 “모바일 상거래가 빠르게 늘고 있고, 모바일 환경에서 각종 간편결제 수단이 새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공인인증서 사용자는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공인인증서는 전자상거래가 아니라 전자입찰이나 전자재판 등에서 전자문서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데 주로 쓰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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