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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과거 스펙을 안보니 미래형 인재가 보이네

등록 2014-08-29 10:48

[열린 채용 스펙은 가라]
공공기관에서 일반기업으로 새내기 채용방식 서서히 변화
학벌·성적·자격증 등 스펙 대신 미션 주고 문제해결 능력 테스트

업무능력 외 창의성·열정도 가늠… 지원자 늘어나 평가위원들 부담
전면 적용하고파도 덤터기 불안감…평가절차 투명성 확보가 문제
‘라운드 미션 컷오프, SK 바이킹 챌린지, 올레 스타 오디션…’

얼핏 이름만 들으면 놀이기구나 가수 오디션을 떠올릴 법하다. 실은 몇몇 기업들이 최근 도입한 스펙초월 채용 프로그램이다. 구직자들에게 ‘스펙보다 끼를 보여달라’고 주문하는 이른바 스펙초월 채용 움직임이 몇몇 공공기관에서 일반 기업으로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스펙초월 채용에 나선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기업들의 채용 방식 변화 흐름과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한국남동발전은 지난해 정규직 전환형 고졸 청년인턴 채용 때 1차 서류심사를 아예 없앴다. 대신 ‘스펙초월 소셜리크루팅’을 도입했다. 지원자를 대상으로 총 4주 동안 4라운드 온라인 미션을 수행하게 하고 ‘생존자’에게 인적성검사, 면접의 기회를 줬다. 이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에 적합한 지원자를 1차 서류심사 대신 온라인 미션으로 대체한 것이다. 지원자의 이른바 ‘스펙’은 모른 채 ‘제로베이스’에서 사람을 평가한 셈이다.

온라인 미션은 4라운드로 구성했다. 1라운드는 ‘나는 주인공이다’, 2라운드는 ‘나는 역사다’, 3라운드는 ‘나는 해결사다’, 4라운드는 ‘나는 직장인이다’라는 주제에 맞춰 미션을 준다. 라운드마다 미션 평가를 거쳐 탈락자가 나오게 된다. 지원 접수자 996명 가운데 미션 서약서에 636명이 서명해 1라운드에 참가했고, 4라운드를 거친 결과 최종 104명이 남았다. 회사 관계자는 “미션수행 초기 단계에서 중도 포기자가 87%에 이르렀다. 입사 의지나 열정이 자동적으로 측정된 것이다”고 분석했다.

남동발전은 올해 대졸인턴 채용도 변화를 줬다. 서류전형을 아예 없앤 것이다. 자격증, 외국어 가점도 폐지했고, 학점과 가족정보 등은 아예 수집하지 않았다. 자신을 피아르(PR)할 수 있는 ‘역량기반지원서’만 작성해 내면 전원 2차 직무능력검사 기회를 줬다.

에스케이(SK)는 우수 인재 조건을 3가지로 꼽는다. 첫째, 스펙이 아닌 직무역량·태도·적성, 둘째, 일하는 지적 능력이 아닌 일하는 상황판단 또는 실행능력, 셋째, 지시받는 인재가 아닌 알아서 잘하는 인재다. 우수 인재는 ‘최고’(Best)가 아닌 ‘적합한’(Right)으로 정의를 새롭게 하고 있다.

에스케이 바이킹 챌린지는 공채 채용과는 다른 별도 전형으로 진행된다. 전체 인턴 선발 규모의 10%는 바이킹 챌린지를 통해 선발한다. 1차는 ‘스토리’ 접수. 성명과 생년월일, 연락처, 졸업시기 4가지 항목만 기재해 지원하면 된다. 학교나 성별, 나이, 학점, 어학점수는 필요없다. 2차는 전국(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에서 오디션 형태로 예선전을 치른다. 3차는 관계사별로 직무역량 합숙면접을 하고 8주 동안 인턴 기간을 거쳐 최종 합격자가 가려진다. 에스케이 쪽은 히말라야 등반이나 창업 같은 독특한 경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가 뚜렷하고 그 목표에 맞는 진심이 담긴 스토리가 있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남동발전과 비슷한 스펙초월 소셜리크루팅을 시행하고 있다. 지원자들은 어떤 개인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2주 동안 인성, 창의성 등 6개 미션을 수행한다. 예컨대 영화 줄거리를 제시하고 ‘내가 주인공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방식이다. 박철규 중진공 이사장은 “중진공은 공공기관 최초로 대졸 수준 직원 채용에 스펙초월 방식을 시범 도입했다. 지난해 최종 면접 대상자 17명 가운데 절반은 스펙초월 소셜리크루팅 전형을 통해 올라온 지원자들이었다. 열정과 창의력을 우선 평가하게 돼 기존 획일화된 채용 관행을 극복할 대안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중진공은 스펙초월 채용이 예상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올해의 경우 지원자가 지난해 2737명에서 7012명으로 무려 156.2% 증가했다. 지난 7월 중진공 본사가 서울에서 경남 진주로 이전해 지원자가 급감할 것으로 우려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스펙초월 채용이 도입되면서 고민거리도 커졌다. 중진공 관계자는 “지원자가 늘어날수록 평가위원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존 정형화된 ‘서류전형→필기시험→면접’ 절차가 자동화 방식이라면, 스펙초월 절차는 지원자를 일대일로 들여다보는 수동 방식이라 공을 더 들여야 한다. 비용부담 못지않게 스펙초월 채용 성과에 대한 불안함도 기업들은 아직 떨쳐내지 못한 상태다. 최근 도입된 방식이다 보니 기존 채용 방식으로 합격한 지원자들과 스펙초월 채용으로 선발된 지원자들의 업무역량을 절대평가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다. 이 때문에 각 기업들이 일반 채용 절차에 스펙초월을 전면 적용하기를 꺼린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인사담당자 입장에선 파격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어도 만약 잘못된 결과가 나오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 기업이 스펙초월 채용을 통해서 기존 정식 제도를 다 버리고 바꾸기에는 비용과 성과 검증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채용 시장에 뛰어드는 이들은 스펙초월 채용에 대해 아직은 매우 조심스럽다. 성균관대 학생인재개발팀 강재덕 차장은 “스펙초월 채용은 정형화된 형태를 벗어나 있어 학생들이 부담을 느낀다. 그렇다고 따로 준비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며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공공기관 채용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냈던 박한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팀장은 “스펙초월 채용의 여러 형식이 시도되고 있는데, 널리 확산될 것이냐 그렇지 못할 것이냐는 채용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정필 최익림 정남구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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