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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핵폐기장 공론화 30년째…지하 455m서 안전성 연구

등록 2014-09-23 20:19수정 2014-09-24 14:34

[‘사용후핵연료’ 처분 핀란드에서 배운다] 핵폐기장 연구시설 ‘온칼로’ 르포
<한겨레>는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산업통상자원부 출입기자들의 핀란드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 연구시설 방문에 참여했다.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최종 처분장 부지를 선정한 나라다. 핀란드는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관리할지, 처분 부지를 어느 곳으로 할지 등 공론화 작업에 꼬박 30년의 세월을 보냈다. 핀란드의 여정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돌아가지만 핀란드 정부는 예외없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원칙으로 ‘안전’ 문제에 다가섰다. 이런 핀란드의 사회적 합의 과정에 주목하고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 포화시점이 임박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살펴봤다.

세계 최초 핵연료 처분 부지인
에우라요키시의 올킬루오토섬
연구시설 세워 지반 적합 조사중
“연구기간 120년중 이제 10년 지나”

핵폐기물 정책 정권 교체와 무관
독립적인 안전 감독기관 ‘스툭’이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 제공하고
지자체 거부권 존중해 충돌 없어
“정책추진 힘은 주민과의 소통”

“이 시설이 연구용도로만 사용된다는 얘긴가요?”(기자)

“네, 이렇게 해서 문제가 없으면 건설허가를 받는 겁니다. 건설허가가 나고 영구처분이 시작돼도 연구는 계속 진행합니다. 전체 연구 기간은 120년이고, 이제 10년 지났어요.”(온칼로 연구조사 책임자)

지난 17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남서쪽으로 240㎞ 떨어진 에우라요키시의 올킬루오토섬. 이곳에는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연구시설인 ‘온칼로’가 있다. 온칼로는 핀란드어로 ‘은폐장소’라는 뜻으로, 최종 처분장으로 적합한지 지하암반 특성을 연구하는 곳이다. 심도 455m에 터널 길이 9.5㎞(폭 5.5m, 높이 6.3m)이다. 설계는 영구처분 시설과 같게 돼 있다. 가파른 경사면의 터널을 차로 굽이굽이 돌아 내려가면 가장 낮은 지하 455m 지점부터 평면 터널이 나온다. 이 터널 양쪽 면으로 다시 동굴이 여럿 뚫려 있다. 동굴 입구에 내려 걷자 10m 간격으로 지름 1.7m, 깊이 8m의 구멍이 나타났다. 사용후핵연료를 묻어 영구처분하는 공간이다.

애초 자작나무밖에 없던 이곳에서 2004년 첫 삽을 뜬 뒤 10년 동안 만들어진 이 거대한 ‘지하동굴’을 보면 단순히 연구시설로만 사용된다고 믿기 어렵다. 온칼로의 연구조사 책임자인 얀네 라이호넨씨는 “그냥 연구시설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 지층은 20억년 넘게 지진이 없었던 곳으로 지반이 안정되게 자리 잡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핀란드 에우라요키시 올킬루오토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최종처분장 연구시설인 온칼로의 지상 터 모습. 연구시설 건설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수송트럭들을 유지·보수하는 곳이다. 전기공, 배관공 등 60여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해안 쪽에 보이는 건물들은 올킬루오토 원자력발전소 1, 2호기.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제공
핀란드 에우라요키시 올킬루오토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최종처분장 연구시설인 온칼로의 지상 터 모습. 연구시설 건설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수송트럭들을 유지·보수하는 곳이다. 전기공, 배관공 등 60여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해안 쪽에 보이는 건물들은 올킬루오토 원자력발전소 1, 2호기.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제공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하고 난 뒤 나오는 우라늄 연료 다발이다.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방출하는 위험물질로 ‘고준위 핵폐기물’이다. 전문가들은 사용후핵연료 방사능이 사라지는 기간을 약 30만년으로 보고 있다. 원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30만년 사이 인류의 역사가 단절될 경우 영구처분 시설의 위험성을 후대에 전달할 방법이 없다며 우려를 나타낸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에서 꺼내 발전소 임시저장 시설 안 수조에 여러 해 담가둔다. 방사성 물질 유출을 차단하면서 폐연료봉의 높은 열을 식히기 위해서다. 그 뒤 행로는 여러 방안이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곳으로 영구처분돼야 한다. 하지만 위험성 때문에 아직 영구처분장이 있는 나라는 없다. 핀란드와 스웨덴 두 곳만이 처분장 부지를 선정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일부 원전의 임시저장 공간이 포화 상태에 이른다. 당장 이를 수십년 동안 담아둘 중간저장을 어떻게 할 지가 당면 과제다. ‘저준위 핵폐기물’(원전에서 사용된 방호복이나 장갑 같은 물건) 처분장인 경주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는 데 20년이나 걸린 것을 감안하면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장기 로드맵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이제 걸음마를 뗀 셈이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핀란드 공론화 ‘30년의 여정’ 핀란드에선 현재 4기의 원전이 운영중이고 1기가 추가로 건설 중이다. 원자력발전 비율은 32.6%(2012년 말 기준)에 이른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를 선정한 나라다. 그곳이 바로 올킬루오토다.

핀란드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 준비는 1970년대 후반 원자력발전소를 처음 시운전하면서 시작됐다. 헤르코 플리트 고용경제부 에너지과 정책심의관은 “처음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할 때 핵폐기물에 대해 함께 논의한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1980년대 초 전체적인 일정표를 짜 장기적인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1978년 심층처분에 대한 타당성 연구를 시작한 핀란드 정부는 1983년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을 결정한 뒤 부지선정을 위해 전국을 대상으로 지질 조사에 나섰다. 첫 단계로 327개 지역을 선정한 정부는 환경 요건과 운반, 인구밀도 등을 반영한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1987년 5개 지역을 추려내 부지특성조사를 했다. 유하니 비라 포시바(POSIVA·사용후핵연료 관리기관) 자문위원은 “지자체의 승인없이도 정부가 부지선정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지자체가 큰 충돌을 겪지 않은 건 정부가 한곳을 부지로 최종 선정하더라도 해당 지자체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핀란드 정부는 1993년부터 7년 동안 부지 상세조사를 거쳐 2000년 올킬루오토를 최종 선정했다. 2001년 5월 핀란드 국회는 사용후핵연료를 이곳에 최종 처분하는 정부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1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찬성은 159명, 반대 3명, 기권 37명이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온칼로는 올킬루오토에 지을 최종 처분장의 실증연구를 수행하려고 만든 연구시설이다. 지하암반특성 연구와 함께 사용후핵연료 최종 처분 기술을 실제와 같은 조건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온칼로 연구 결과를 토대로 2012년 최종 처분 시설 건설허가를 신청했으며 내년 1월 건설허가 승인 여부가 결정된다. 계획대로면 2020년 운영허가를 받은 뒤 2022년 최종 처분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야나 아볼라티 고용경제부 에너지과 수석고문은 “핀란드 핵폐기물 정책은 장기적 정책과 전략을 수립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추진됐다. 큰 틀의 원칙을 결정하고, 건설과 운영 허가를 내리는 단계에서 해당 지자체의 거부권을 분명하게 존중해줬다. 30년 동안 정책 추진의 가장 큰 힘은 국민과 투명한 소통이었다”고 말했다.

온칼로의 지하 455m 터널 측면에 뚫은 동굴 바닥에 10m 간격으로 구멍이 나 있다. 사용후 핵연료 집합체를 처분용 저장용기(무게 30톤)에 넣은 뒤 이를 보호펜스가 설치된 구멍으로 삽입하고 벤토나이트라는 물질로 덮는다. 이후 터널을 입구까지 화강암이나 시멘트로 다시 메워 처분을 완료하게 된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제공
온칼로의 지하 455m 터널 측면에 뚫은 동굴 바닥에 10m 간격으로 구멍이 나 있다. 사용후 핵연료 집합체를 처분용 저장용기(무게 30톤)에 넣은 뒤 이를 보호펜스가 설치된 구멍으로 삽입하고 벤토나이트라는 물질로 덮는다. 이후 터널을 입구까지 화강암이나 시멘트로 다시 메워 처분을 완료하게 된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제공
■ 독립적 규제기관 ‘신뢰를 얻다’ 핀란드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과정에서 주목할 대목은 감독기관인 스툭(STUK)의 역할이다. 핀란드 원자력 행정체계를 보면 허가와 규정에 관한 책임은 고용경제부가, 안전관리는 ‘방사선·원자력 안전규제기관’인 스툭이 담당한다. 스툭은 원자력 관련 규제·관리 기능 외에 입법 초안 작성과 규제 기관에 대한 직권 제재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스툭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독립성이다. 리스토 팔테마 스툭 핵폐기물 규제담당관은 “스툭은 ‘안전’을 다루는 기관으로 정치적 개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철저하게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스툭의 또다른 역할은 국민에게 방사선과 원자력 안전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스툭의 독립적 지위에 대한 신뢰가 크다보니 국민은 스툭의 정보를 믿고 판단 근거로 삼는다. 사용후핵연료 부지선정 등 과정에서 스툭은 지역주민들과 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 주요 의사결정 등 기본 정보는 온라인 누리집에 공개하고 지역주민과 일년에 한차례 이상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스툭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특정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제3자로서 중립적인 정보 제공 기능만을 한다는 것이다. 리스토 이삭손 스툭 공보관은 “우리는 안정성 이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스툭은 특정 의견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지 않는다. 어느 정보가 옳고 그른지 판단은 지역주민의 몫이다. 다만 국민들이 원전 같은 복잡한 현안을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스툭의 규제 행위가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스툭은 소통의 최우선 대상이 원자력 산업계가 아닌 지자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정보 제공 역시 지자체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 에우라요키의 선택 ‘얻은 것과 잃은 것’ 에우라요키는 인구 6000여명의 작은 도시다. 이곳에는 올킬루오트 원전 1, 2호기가 운영중이고 3호기가 건설중이다. 에우라요키는 1970~80년대 처음 원자력발전소가 지어질 때만 해도 핵폐기물을 지역 밖으로 내보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1980년 초반 사용후핵연료의 국외 수입·수출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면서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한 지역 논의가 본격화됐다.

에우라요키 시의회는 올킬루오토 최종 처분장 유치 당시 의원 20대 7 의견으로 찬성표가 많았다. 베사 얄로넨 시의회 의장은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역시 안전성이었다. 환경영향평가 등 정부가 제공한 자료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우리 지역에 원전이 들어서 있다는 책임감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우라요키가 최종 처분장을 유치한 배경에는 고용 창출 등 지역에 불어올 경제적 이익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안전성을 경제적 이익과 맞바꾼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에우라요키 쪽은 고개를 저었다. 다만 주머니 사정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원래 농업 기반 도시였던 에우라요키는 원전이 들어선 뒤 탈농업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에우라요키는 온칼로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들로부터 최근 10년 동안 3000만 유로(400여억원)의 세수입을 거뒀다. 에우라요키의 한 해 예산은 5000만 유로(670여억원)다. 하리 히티외 에우라요키 시장은 “원전과 사용후핵연료 최종 처분장 유치로 대단히 큰 고용창출 효과를 일으켰다. 관광객들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헬싱키·에우라요키/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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