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왼쪽)이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과 2010년 5월28일 서울 반포동 한 호텔에서 ‘자원개발 협력단 출범식’을 연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경영성과 미흡땐 불이익 감수’
시한 정해놓고 계약 밀어붙여
부실 떠안고 성과급 3076만원
시한 정해놓고 계약 밀어붙여
부실 떠안고 성과급 3076만원
강영원(64)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2009년 9월 주무부처 책임자인 최경환(60)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제출한 경영성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캐나다 하베스트를 인수한 정황이 드러났다. 하베스트 인수로 석유공사는 총 1조5000억여원의 손실을 입게 됐다.
2일 <한겨레>가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석유공사의 ‘사장경영계약 변경안’(2009년 9월24일)을 보면, ‘서약서’라는 제목의 한장짜리 문서가 첨부돼 있다. 여기엔 ‘정부가 실시할 기관장 평가결과, 경영계획 이행실적이 미흡할 경우 해임 등 어떤 불이익도 감수할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거래’ 당사자인 두 명의 이름과 서명이 있다. 바로 최 장관과 강 전 사장이다. 나중에 둘은 서약서에 자필로 서명했다. 공기업 사장은 매년 주무부처 장관과 경영계획 계약을 체결하고 이행실적을 평가받는다. 계약을 맺은 뒤 사정이 생기면 협의해 계획을 바꿀 수 있다.
강 전 사장은 2008년 기관장 경영평가에서 ‘보통’ 등급(60점 이상 70점 미만)을 받았다. 석유공사의 기관평가는 시(C)등급이었다. 경영계획 이행실적은 인사와 성과급에 반영된다. 50점 미만인 ‘미흡’에 해당하면 해임조처가 되는데, ‘보통’ 등급을 받은 강 전 사장으로선 당장 이듬해 평가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2009년 3월, 강 전 사장은 스위스 석유회사 아닥스 인수를 추진했다. 아닥스만 손에 쥐면 2009년 경영평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닥스는 괜찮은 매물이었다. 아닥스 인수 추진에 힘을 얻은 강 전 사장은 애초 세웠던 2009년 경영계획 목표를 바꿨다. 자주개발률을 상향조정하고 인수합병(M&A)으로 2억 배럴의 매장량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을 지식경제부에 제시해 경영계약을 수정해 체결했다.
문제는 석달 뒤인 6월 아닥스 인수가 실패하면서 발생했다. 강 전 사장은 상향조정한 목표 달성이 어렵게 되자, 같은 해 9월24일 성과 목표를 낮춰 다시 경영계약을 변경했다. 다만 그는 ‘인수합병으로 2억 배럴의 매장량을 확보한다’는 조건은 그대로 유지했다. 당시 경영계약 변경안에 들어 있는 최 장관과 강 전 사장의 ‘서약서’ 내용을 고려하면, 강 전 사장으로선 어떻게 해서든 12월까지 2억 배럴의 ‘딜’을 성사시켜야 했다.
강 전 사장은 최 장관과 경영계약 변경안을 체결하기 전인 9월 초부터 이미 ‘하베스트 연내 인수’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하베스트 프로젝트 사전 평가 분석’(메릴린치 자문보고·2009년 9월3일 작성) 자료를 보면, 인수합병 일정표에는 2009년 9월 첫 회의를 시작해 넉달 만인 11월 계약을 종료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클로징’(Closing·마무리)은 정확히 11월16일로 기재돼 있다. 실제 거래는 이보다 보름 남짓 이른 시점에 완성됐다. 석유공사 이사회는 같은 해 10월29일 애초 계획에 없던 하베스트의 부실자산 ‘날’(정유회사·NARL)까지 떠안는 조건으로 인수 계약을 승인했다.
결국 강 전 사장은 2009년 기관장 경영평가에서 ‘양호’ 등급(70점 이상 80점 미만)을, 석유공사는 기관평가에서 에이(A)등급을 받았다. 강 전 사장은 그해 경영평가 성과급으로 3076만8000원을 챙겼다.
<한겨레>는 해명을 듣고자 강 전 사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정필 류이근 기자 fermata@hani.co.kr
캐나다 하베스트 현지법인이 2013년 12월6일에 이어 12월17일 유동성 위기와 관련해 한국석유공사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문건.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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