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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먹튀’ 걱정 앞서 삼성 자신부터 돌아보길

등록 2015-06-05 20:07수정 2015-06-06 15:53

현장에서
4일 아침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지적한 내용이었다. 엘리엇은 경영 참가 목적으로 삼성물산의 주식을 더 사들여 7.12%를 보유했다고 이날 공시했다.

두 회사의 합병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한 삼성이 일격을 맞은 모습이다. 삼성은 2003년 에스케이(SK)와 갈등한 소버린을 끄집어냈다. 엘리엇의 행동은 주주가치가 훼손됐다며 경영 참가를 목적으로 주식을 매입해놓고 2년 뒤 팔고 나가 9천억원의 차익을 얻은 소버린의 ‘먹튀’와 같은 행동이라고 했다. 엘리엇도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고, 이 때문에 국부가 유출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엘리엇이 목소리를 내 당장 주가는 오르지만 향후 팔고 나가면 추락해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삼성이 내세운 논리가 맞는지 의문이다. 2003년 3월 소버린이 주식 매입을 시작한 시점에 에스케이 주가는 7926원이었다. 소버린이 주식을 팔고 나간 2005년 5월말 7만515원까지 치솟았고, 이후에도 상승세를 타 2006년 12월말에는 9만8237원이었다. 소버린과 갈등하며 에스케이의 지배구조가 나아지고 그만큼 회사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소버린이 돈을 버는 동안 에스케이 투자자 대부분도 같은 덕을 봤다.

물론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가가 오른 뒤 팔고 나가 버리면 삼성물산의 주가가 미끄러질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합병비율은 정해져 있어, 4일부터 삼성물산 주가가 제일모직 주가보다 크게 올라 괴리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엇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한 삼성이 개미투자자들을 걱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더욱이 개인투자자들은 이틀새 260만주를 내다 팔았다.

‘삼성물산 어닝 쇼크? 현재 주가가 더 쇼크’(교보증권 4월24일) 등의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 삼성은 삼성물산의 주가가 최저인 시점에 두 회사의 합병을 결정했다. 이 때문에 29조5천억원의 자산을 가진 삼성물산이 9조5천억원 자산의 제일모직보다 훨씬 낮은 평가를 받아 합병비율이 정해졌다. 시장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고, 결국 주주가치가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삼성은 시장의 불만에 ‘일부의 시각’과 ‘시너지 효과’란 말만 고장난 레코드처럼 반복했다.

이정훈 기자
이정훈 기자
삼성은 엘리엇이 소버린처럼 주주가치를 거론하고 나서야 주주들과 대화에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의 최치훈 사장과 제일모직의 윤주화 사장 등이 투자자들을 만나 향후 회사 비전을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소버린이 공격하자 에스케이가 개선책을 내놓은 것처럼 허둥대는 꼴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등으로 부의 불법·편법 승계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경영권 승계만을 위해 삼성 지배구조를 개편해 주주가치를 훼손하면 ‘꼼수 승계’라는 또다른 꼬리표가 추가될 수밖에 없다. 삼성이 ‘먹튀’와 개미투자자를 동원해 책임을 회피하기에 앞서 제 행동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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