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사는, 1년에 한두번 명절 때만 만나는 고모가 올해도 어김없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어렸을 땐 예뻤었는데 너 살찐거니?” 백수 삼촌도 거든다. “언제까지 놀래? 우선 아무 데나 들어가.” 몇 년째 ‘기러기 아빠’ 신세인 작은 아버지도 한 마디. “너도 얼른 정착해야지. 빨리 결혼해.”
친척 어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국 사회에서 아랫사람이 “너나 잘하세요”라고 받아칠 수 있을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가슴앓이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친척’이란 이름의 윗어른이기 때문이다.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추석과 같은 명절 기간에는 사회가 아무리 급변해도 결국 ‘나이 순, 성별 순, 촌수 순’이라는 권위주의적 위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런 스트레스는 자신의 속마음을 적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폭로된다. 이 폭로가 모이면 데이터, 한 사회를 읽는 지표가 된다. 트위터 코리아가 한국 트위터 사용자들이 지난해 추석 연휴 기간에 작성한 추석 관련 글 12만5000건을 분석한 결과 연관어 1위가 ‘즐거운’, 2위가 ‘스트레스’, 3위가 ‘힘들다’, 4위가 ‘울다’였다고 22일 발표했다. 미국 기업인 트위터는 이런 명절 관련 분석 작업을 미국 본사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 명절의 특수성에 기인한 조사다.
추석에는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와 같은 형식적인 인삿말이 많이 오가는 만큼 전체의 56%가 긍정적 글이었지만 부정적인 내용도 34%에 이르렀다. 연관어로만 보면 10위권 가운데 6개가 스트레스·힘들다·울다·역겹다·적적하다·피로 등 부정적 단어였다. 트위터 코리아는 보도자료를 통해 “추석 스트레스는 제사 준비의 어려움이나, 취업과 결혼이 어려워진 젊은 세대 중심으로 매년 추석 온라인 상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를 발표하며 트위터 코리아는 ‘추석 매너 캠페인(그림·chuseok2015.com)’을 제안하고 나섰다. “모두가 즐거운 추석을 만들자”는 취지라 한다. 오는 29일까지 자신의 트위터에 추석에 흔히 마주치는 ‘비매너 상황’을 올리고 ‘#매너가_추석을_만든다’는 해시 태그를 달면 심사를 통해 경품을 준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