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턴의 원저(왼쪽)와 한경BP의 번역본
현장에서
<한겨레>는 10월30일치 토요판 커버스토리에서 <한국경제>의 자회사 한경비피(BP)가 앵거스 디턴의 〈The Great Escape〉를 왜곡 번역했으며,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과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이 지난 1년 동안 디턴의 이론에 대해 잘못된 주장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경제는 2일치 신문에서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저주하고 싶은 자들의 또다른 왜곡’이라는 긴 부제를 단 사설을 통해 반론을 폈다.
반론은 한겨레 기사에 대한 반박과 디턴의 핵심 이론에 대한 그들의 기존 해석의 재강조, 이렇게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앞서 한겨레는 면밀한 검토 결과, 한경비피의 왜곡이 ‘책 제목→책 편성→장·절 제목→본문’의 차례로 체계적으로 이뤄졌을 뿐 아니라 디턴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 담긴 현진권 원장의 서문이 앞부분에 달렸으며, 이로 인해 디턴이 얘기하고자 했던 취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한국경제의 사설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 왜곡의 실상을 축소하고 있다. 사설은 “서문과 도입글을 합쳐 중복되는 부분을 줄이거나 부제의 일부 표현을 바꾼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한겨레>가 밝혀낸 왜곡상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사설은 특히 책의 5장에서 행해진 왜곡에 대해 모른 체하고 있다. 이를테면 불평등의 심화에 대해 디턴이 우려를 표명한 대목을 빼버린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설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것일 뿐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원저자가 써놓은 내용을 출판사가 멋대로 바꾼 것이 독자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공감할 독자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사설은 또 “디턴 경제학의 본질은 ‘위대한 탈출을 통해 인류는 더욱 행복해졌고 더 잘살게 됐다’는 점”이라고 강변했다. 이는 한국경제가 지난 1년 동안 자사의 지면을 통해 유포해온 ‘피케티 대 디턴’이라는 대립 구도가 ‘잘못된 해석’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디턴은 한겨레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피케티에 대한 지지 의사를 확고히 밝혔고, 한경비피에 대해서는 “이 책이 불평등에 관한 다른 저작들과 대척점에서 읽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 원장의) 서문도 새로운 번역에서 빼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물론 이것은 디턴이 경제 발전의 의의를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희망’을, 인류 미래에 대한 ‘조심스런 낙관’을 말하며 책을 끝맺는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와 과거에 대한 긍정이나 미화와는 다르다. 한국경제는 이 둘을 혼동하는 듯하다. 또 한국경제는 이번 사설에서 자신들의 잘못된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겨레를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저주하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가 불평등하지 않다거나 현존하는 불평등이 성장을 자극한다면서 애써 현실을 미화하는 것은 낙관이 아니라 기만이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악머구리 같은 현실도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진짜 낙관이며, 이 믿음에 실질적 힘을 주는 것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다. 이러한 ‘반성적 낙관’의 결론은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발전은 지금과는 달리 평등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디턴 경제학의 핵심이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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