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보이스피싱 쫓고 쫓기는 10년
“ㅇㅇ경찰서입니다. ㅇㅇㅇ선생님 맞으시죠? 선생님 통장이 범죄에 연루됐습니다. 금방 금감원 직원이 전화를 걸 테니까 안내하는 대로 하십시오.”→“금감원 조성목 과장인데요, 은행에 있는 돈을 전부 찾아 현찰로 준비해 집에 보관하세요. 저희 직원이 가서 안전하게 조처하겠습니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에 여러 건의 신고가 접수되면서 화제를 모았던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이다. 사기범이 사칭한 ‘조성목 과장’은 직급은 다르지만 금감원 간부의 실명이다. 그는 금융사기 대응을 담당하는 금감원 서민금융지원국의 선임국장이다. 보이스피싱과의 전쟁을 총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인 셈이다. 이 사례는 사기범이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눈 금감원 현직 간부를 사칭했을 뿐 아니라, 최근 등장한 ‘직접 찾아가는’ 보이스피싱 수법을 동원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다소 황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금융당국과 경찰의 금융사기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를 피하려는 사기범들의 대응이 한층 대담하게 바뀌어가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 보이스피싱 범죄가 처음 발생한 시기는 2006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0년 동안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금융사기는 갈수록 교묘하고 치밀해졌다. 금융사기 조직과 금융당국·경찰의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사기 수법도 ‘진화’해 온 것이다.
뚫고야 만다
중국동포 말투로 전화 단순사기서
최근엔 금감원 간부까지 사칭해
“‘현금 안전 보관” 운운 집 찾아가
‘연구소’ 두고 시나리오 작성도 1세대 보이스피싱은 중국동포 말투로 전화를 걸어와 피해자를 속여 돈을 송금·이체하도록 하는 단순한 수법이었다. 피해 사례가 널리 알려지면서 피해자가 직접 돈을 보내게 하는 방식이 어려워지자, 2012년부터는 2세대 수법인 피싱사이트 사기가 등장했다. 초기 화면을 금융회사 사이트와 똑같게 한 가짜 인터넷뱅킹 사이트를 국외 서버를 통해 만든 뒤 접속하게 해 개인금융거래 정보를 가로채는 수법이었다. 3세대 수법은 파밍이라는 해킹 기술을 접목해 피싱사이트가 위조 페이지라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게 한층 ‘발전’했다. 이후 추가 인증 절차를 마련하는 등 전자금융사기 예방서비스가 전면 시행되자, 전화·인터넷·자동응답시스템(ARS) 등 여러 수단을 결합해 추가 인증 정보를 가로채는 4세대 수법이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 진화뿐 아니라, 금융사기 조직의 속임수 수법도 지능화했다. 자체 ‘연구소’를 두고 보이스피싱에 활용할 대사와 상황을 연구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국내 금융정책까지 사기에 적극 활용했다. 안심전환대출이나 서민금융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사기를 쳐 돈을 가로채는 식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근거를 두고 있어 국내 경찰이 소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현실적인 근절 대책으로 사기범이 피해자의 계좌에서 돈을 빼내가지 못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올해 들어 금융당국은 통장에 입금된 돈을 자동화기기에서 인출할 경우, 입금 시점부터 인출 시점까지 걸리는 시간을 10분에서 30분으로 늘렸고, 대상 금액도 300만원 이상에서 100만원 이상으로 확대했다. 또 은행연합회 공동전산망을 통해 다수의 금융사기 피해 계좌를 신속히 지급정지할 수 있도록 했고, 대포통장 악용 가능성을 막기 위해 1년 이상 사용 실적이 없는 계좌의 자동화기기 인출 한도를 하루 600만원에서 70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실제 전화통화를 녹음한 ‘그놈 목소리’를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해 피해 예방 효과도 높였다. 이런 대책이 힘을 발휘해 피싱사기는 크게 줄었다. 올해 상반기 월평균 1707명이던 피싱사기 피해자 수는 10월에 287명으로 급감했다. 전체 금융사기 월평균 피해금액도 같은 기간 261억원에서 85억원으로 줄었다. 막고야 만다
계좌서 돈 못 빼가게 하는 데 초점
ATM기기 인출까지 30분으로 늘려
‘그놈 목소리’ 공개해 예방효과
“돈·금융정보 요구, 사기임을 명심” 피해금을 계좌에서 인출할 길이 막히자, 사기범들은 최근 ‘직접 찾아가는’ 보이스피싱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주로 노인을 상대로 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계좌 정보가 노출돼 안전조처”가 필요하다며 겁을 줘 현금을 찾아 집안 냉장고나 장롱, 지하철 물품함 등에 보관하도록 하는 수법이다. 이후 사기범은 피해자를 찾아가 가짜 신분증을 보여준 뒤 돈을 받아가거나 집에 침입해 훔쳐가기도 한다. 실제 직접 만나 돈을 받아가는 보이스피싱 사기는 올해 1~3월에 한 건도 없었으나 9월 23건, 10월 11건으로 증가했다. ‘그놈 목소리’로 사기범 음성이 공개되자, 아예 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한 금융사기나 수사기관을 사칭한 공문을 보내 전화를 걸게 한 뒤 개인금융정보를 빼내는 ‘레터피싱’ 수법도 늘고 있다. 김용실 금감원 금융사기대응팀장은 “최근 새로 늘어나는 사기 수법에 속지 않도록 대국민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라며 “돈이나 개인금융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는 금융사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고, 레터피싱의 경우엔 공문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지 말고, 실제 경찰서나 검찰청에 전화해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중국동포 말투로 전화 단순사기서
최근엔 금감원 간부까지 사칭해
“‘현금 안전 보관” 운운 집 찾아가
‘연구소’ 두고 시나리오 작성도 1세대 보이스피싱은 중국동포 말투로 전화를 걸어와 피해자를 속여 돈을 송금·이체하도록 하는 단순한 수법이었다. 피해 사례가 널리 알려지면서 피해자가 직접 돈을 보내게 하는 방식이 어려워지자, 2012년부터는 2세대 수법인 피싱사이트 사기가 등장했다. 초기 화면을 금융회사 사이트와 똑같게 한 가짜 인터넷뱅킹 사이트를 국외 서버를 통해 만든 뒤 접속하게 해 개인금융거래 정보를 가로채는 수법이었다. 3세대 수법은 파밍이라는 해킹 기술을 접목해 피싱사이트가 위조 페이지라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게 한층 ‘발전’했다. 이후 추가 인증 절차를 마련하는 등 전자금융사기 예방서비스가 전면 시행되자, 전화·인터넷·자동응답시스템(ARS) 등 여러 수단을 결합해 추가 인증 정보를 가로채는 4세대 수법이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 진화뿐 아니라, 금융사기 조직의 속임수 수법도 지능화했다. 자체 ‘연구소’를 두고 보이스피싱에 활용할 대사와 상황을 연구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국내 금융정책까지 사기에 적극 활용했다. 안심전환대출이나 서민금융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사기를 쳐 돈을 가로채는 식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근거를 두고 있어 국내 경찰이 소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현실적인 근절 대책으로 사기범이 피해자의 계좌에서 돈을 빼내가지 못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올해 들어 금융당국은 통장에 입금된 돈을 자동화기기에서 인출할 경우, 입금 시점부터 인출 시점까지 걸리는 시간을 10분에서 30분으로 늘렸고, 대상 금액도 300만원 이상에서 100만원 이상으로 확대했다. 또 은행연합회 공동전산망을 통해 다수의 금융사기 피해 계좌를 신속히 지급정지할 수 있도록 했고, 대포통장 악용 가능성을 막기 위해 1년 이상 사용 실적이 없는 계좌의 자동화기기 인출 한도를 하루 600만원에서 70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실제 전화통화를 녹음한 ‘그놈 목소리’를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해 피해 예방 효과도 높였다. 이런 대책이 힘을 발휘해 피싱사기는 크게 줄었다. 올해 상반기 월평균 1707명이던 피싱사기 피해자 수는 10월에 287명으로 급감했다. 전체 금융사기 월평균 피해금액도 같은 기간 261억원에서 85억원으로 줄었다. 막고야 만다
계좌서 돈 못 빼가게 하는 데 초점
ATM기기 인출까지 30분으로 늘려
‘그놈 목소리’ 공개해 예방효과
“돈·금융정보 요구, 사기임을 명심” 피해금을 계좌에서 인출할 길이 막히자, 사기범들은 최근 ‘직접 찾아가는’ 보이스피싱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주로 노인을 상대로 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계좌 정보가 노출돼 안전조처”가 필요하다며 겁을 줘 현금을 찾아 집안 냉장고나 장롱, 지하철 물품함 등에 보관하도록 하는 수법이다. 이후 사기범은 피해자를 찾아가 가짜 신분증을 보여준 뒤 돈을 받아가거나 집에 침입해 훔쳐가기도 한다. 실제 직접 만나 돈을 받아가는 보이스피싱 사기는 올해 1~3월에 한 건도 없었으나 9월 23건, 10월 11건으로 증가했다. ‘그놈 목소리’로 사기범 음성이 공개되자, 아예 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한 금융사기나 수사기관을 사칭한 공문을 보내 전화를 걸게 한 뒤 개인금융정보를 빼내는 ‘레터피싱’ 수법도 늘고 있다. 김용실 금감원 금융사기대응팀장은 “최근 새로 늘어나는 사기 수법에 속지 않도록 대국민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라며 “돈이나 개인금융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는 금융사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고, 레터피싱의 경우엔 공문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지 말고, 실제 경찰서나 검찰청에 전화해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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