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대금 결제용…3조~4조원 추산
정부 “수용 불가…결제방안 협의”
정부 “수용 불가…결제방안 협의”
최근 경제 봉쇄가 해제된 이란이 국내 은행에 개설한 금융계좌에서 잔고 일부를 인출하겠다는 의사를 우리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이란 간 무역 대금 결제 계좌의 잔고가 줄게 되면, 국내 기업의 대이란 수출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이란 특수’ 기대감 뒤에 숨어있던 결제통화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28일 기획재정부와 금융권 쪽 말을 종합하면, 이란 정부는 최근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개설한 계좌에서 잔액의 일부를 인출하겠다는 의사를 우리 정부에 타진했다. 이 계좌는 지난 2010년 한-이란 간 수출입 대금 결제를 위해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개설한 원화 계좌로, 현재 잔고는 3조~4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란 쪽이 원화 계좌 잔고 중 소액을 인출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잔고 규모와 인출 의사를 밝힌 금액 등의 금융거래 정보는 외부에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이란 쪽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조만간 이란 쪽과 해당 내용 등을 포함해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 쪽의 자금 인출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수출 기업들이 수출 대금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국내 기업이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을 이란에 수출할 경우, 이 계좌를 통해서만 대금을 받을 수 있다. 이 계좌의 잔고가 줄면 그만큼 이란이 국내 기업에 수출 대금을 지급할 여력도 감소한다.
이는 무역 결제의 대표 통화인 ‘달러’사용을 미국 정부가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란 경제 봉쇄가 해제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달러 사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달러 사용이 금지된 상황에서 이란의 원화 계좌 잔고가 줄면 그만큼 국내 수출 기업이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이란 쪽에 자금 인출은 어렵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상황이다. 한은의 이 관계자는 “이란이 원화 자금을 인출한 뒤 다른 경로를 통해 달러로 환전해 사용하게 되면, 우리·기업은행이 자칫 미국 금융기관과의 다른 거래에서 제약을 받을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이란은 한푼의 현금이 아쉬운 상황이다. 수년간의 경제 봉쇄로 취약해진 자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써야할 돈은 늘어났으나, 수년간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나라 곳간이 부실해진 탓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보면, 이란은 2012년 이후 4년 연속 재정적자가 불어나고 있다. 주된 수입원인 원유값마저 크게 내린 탓에 앞으로도 부실한 재정을 메우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재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정부는 이란과의 교역·투자확대에 대비하여 현행 원화결제시스템의 향후 운영방향을 포함해 이란과의 결제방안에 대해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세종/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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