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부쩍 잦아졌다. 취임 전 말을 아끼던 때나 취임 뒤 한동안 누군가가 써준 글을 읽는 듯한 모습과는 다르다. 그런데 유 부총리의 최근 발언을 좇아가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아리송하다.
① “최근 지표를 보면 어려운 가운데 긍정적 신호가 보이고 있다. 과도한 불안심리가 확산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7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 수출·소비·투자 지표가 모두 내리막인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정부는 ‘경제 주체들의 심리 관리용’ 발언이라고 한다. 경제는 경제 주체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수 있으니 이런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문제는 심리 위축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평균소비성향이 5년째 하락 중이다. 현재 우리 경제가 몇 마디 말로 심리가 개선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에 빠져 있다.
② “정부는 청년 고용절벽을 막으려고 노동개혁 법안, 임금피크제 확산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는데, 국회는 입법을 지연하고 있다.”(21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 구조개혁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나 법률 몇개 바꾼다고 구조개혁이 완성되는 게 아닐뿐더러, 지금의 침체가 구조개혁 지연 때문만도 아니다. 정부는 정작 경기를 살리는 데 쓸 수 있는 올해 예산은 짜게 편성했다. 정부가 할 일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③ “객관성이 결여된 자료에 근거해 소득 격차가 심각하다고 억지 주장 펴지 말라.”(21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 이는 국가 공식 통계에 기초한 재분배 지표(지니계수·5분위 배율 등)가 개선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유 부총리가 지목한 ‘객관성이 결여된 자료’는 토마 피케티 교수(파리경제대)의 방법론에 근거해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가 발표한 논문으로 보인다. 납세자료에 기초한 이런 연구는 고소득자의 소득 포착률과 응답률이 낮은 국가 공식 통계의 부실함에서 비롯됐다. 조세와 예산을 전공한 재정학자인 유 부총리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최근 발언의 의도가 심리 관리도, 구조개혁도, 정확한 통계 해석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일까? 일부에선 ‘총선용’이란 해석도 내놓는다. 그러나 위축된 심리가 말 몇 마디로 회복되지 않고, 법안이 통과된다고 내 일자리가 생기지 않으며, 소득 격차가 더 심해졌다고 알고 있는 국민이 다수인 현실에서 선거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박근혜 대통령한테 향하는 경기 악화의 책임을 야당이나 전문가에게 돌리려는 ‘심기 의전용’으로 읽힌다. 문제는 이런 심기 경호도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차라리 현 상황의 엄중함을 낱낱이 대통령한테 보고하고 해법을 찾는 게 정도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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