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30세대’를 울적하게 할 두 가지 뉴스가 잇따랐다. 이 세대의 가계소득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게 첫번째였다. 그다음은 청년(15~29살) 실업률이 지난달 12.9%로, 같은 기준으로 실업률을 집계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가장 높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2030세대를 좀더 두려움으로 몰고 간 사건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세기의 대결’로 불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바둑 대국이다. 알파고의 승리로 끝난 대국 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우려가 더 커졌다. 소득·실업률 통계는 ‘현재 2030세대’의 암담한 현실을 반영한다면, 알파고의 승리는 ‘미래 2030세대’를 불안케 하는 요인이다.
근로소득 증가, 10여년간 더딘 걸음
상속 등 이전소득 증가율 절반 수준
‘일’에 기댄 청년세대 소득에 큰 타격 노조 보호 못받고 영향력 적어
고용 불안 땐 청년층부터 희생양
세계적 청년실업률 증가로 나타나 인공지능 등 기술 진보가 초래한
일자리 대체·파괴도 위협 요인 일자리 확대 정책만으론 한계 뚜렷
“앞선 세대 자산 고루 상속 위해선
세금으로 청년수당 지급해야” 주장도 ■ 2030세대 근로소득의 퇴조 본격화 통계청은 가계소득을 근로·사업·재산·이전 등 4가지 소득원으로 나눠 조사한다. 27일 <한겨레>가 통계청이 한 ‘가계동향 조사(2인 이상 전국 가구)’ 13년치를 분석했더니 근로소득은 더디게 늘고 있지만, 이전소득은 빠르게 증가했다. 해당 통계가 작성된 2003년부터 2015년까지 근로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4.8%였다. 반면 이전소득 증가율은 이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8.0%였다. 일을 해서 벌어들인 소득보다 부모나 자녀 등 타인한테 넘겨받은 소득(사적이전소득) 또는 국민·기초연금 등 공적 연금 소득(공적이전소득)이 가계소득에서 갖는 위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물론 지금까지는 근로소득의 비중이 70%가량으로 압도적이다. 그러나 지난 12년간의 소득원별 차별화된 증가 흐름이 지속·강화될 경우 가계소득 내 근로소득의 비중 하락은 시간문제에 가깝다. ‘근로소득의 퇴조’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누구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까? 다른 연령대에 견줘 근로소득 의존도가 가장 높은 2030세대다. 지난해 2030세대(가구주가 39살 미만인 가구)의 가계소득(경상소득 기준) 대비 근로소득 비중은 78.6%였다. 전체 가구 평균인 69.1%보다 10%포인트 가까이 웃돈다. 근로소득 비중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낮아진다. 40대에선 72.0%, 50대 71.4%로 서서히 떨어지다가 은퇴 연령인 60대 이상 세대엔 근로소득 비중이 46.8%로 뚝 떨어진다. 지난해 2030세대의 가계소득 감소(1만3808원)도 근로소득(2만4893원)이 크게 줄어서 빚어진 것이다. ‘근로소득 퇴조’ 현상이 2030세대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 청년한테 등돌리는 고용시장 2030세대의 근로소득 위축은 두 가지 경로로 이뤄진다. 일단 근로소득의 원천인 일자리 부족이다. 지난해 청년(15~29살) 실업률은 9.2%로, 지금과 같은 기준으로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높다.
더 주목할 대목은 2000년 들어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청년 실업률과 전체 실업률 간의 격차다. 2000년대 초반(2000~2002년) 3%포인트 후반대이던 격차는 이후 10년간 4%포인트 초중반대로 벌어졌고, 최근 2년(2014~2015년)엔 5%포인트 중반대까지 뛰어올랐다. 실업의 고통이 특히 청년층에 가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좁은 취업 문턱을 넘더라도 괜찮은 일자리를 만나기 어려운 현실도 2030세대의 근로소득 위축의 배경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2003~2015년)’를 따져보니, 지난 10년간 연령대별 임금노동자 대비 비정규직 비중은 청년만 늘어났다. 2006년엔 일자리를 얻은 청년 100명 중 비정규직이 33명이었으나 2015년엔 35명으로 2명 증가했다. 반면 30대와 40대, 50대는 각각 8.5명, 8.0명, 7.3명씩 줄었다.
유독 청년들만 고용시장에서 홀대를 받은 셈인데 왜 그런 걸까? 그 실마리 중 하나는 2009년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신입사원 임금 삭감 바람에서 찾을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고용시장이 불안정하자 정부는 2009년 초에 신입사원의 초임을 깎고, 이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신입사원을 더 뽑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는 실제 정부 입김이 강한 공기업과 금융권은 물론 30대 그룹으로 빠르게 퍼져 갔다. 이 때문에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2009년 또는 2010년에 입사한 직원은 2009년 이전에 입사한 선배들이 받던 신입사원 임금보다 20~30% 낮은 급여를 받았다.
이는 고용시장이 어려워질 때 청년이 가장 손쉬운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최근에도 이런 양상은 되풀이되고 있다. 다시 실업률이 올라가면서 금융회사들의 사용자단체들은 신입사원 초임 삭감을 노동조합과의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노조의 울타리 안에 들어간 직원들은 보호를 받을 수 있으나, 청년은 그 울타리에 미처 들어가지 못하거나 직장 내 발언력이 약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 알파고의 등장은 또다른 위협 2030세대의 근로소득 위축을 설명하는 분석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게 ‘기술 진보’다. 새롭게 등장한 기술은 산업의 지형을 바꿨고 그 과정에서 고용 시장도 큰 변화를 겪었다. 신기술은 특히 2030세대의 일자리에 큰 충격을 준다. 인력을 조정해야 할 경영자 입장에선 노동법이나 노조의 보호막 밖에 있는 신규 채용 축소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양상은 우리보다 기술혁신이 앞섰던 선진국 고용시장에서 확인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실업률 통계(1971~2014)를 보면, 1970년대엔 회원국 평균 실업률과 청년 실업률이 각각 0.386%와 0.393%로 사실상 격차(0.007%포인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엔 1.14%포인트, 1990년대엔 1.52%포인트로 격차가 확대됐다. 2000년대 들어선 1.71%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달 초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인공지능 기술에 획기적 진전이 이뤄졌음을 보여줬다. 불과 몇 달 전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인공지능의 등장을 ‘4차 산업혁명’으로까지 치켜세웠다. 경제에 미칠 파급이 증기기관(1차)·전기 및 대량생산시스템(2차)·컴퓨터(3차)에 버금가거나 더 클 것이라는 뜻이다. 이 포럼은 인공지능으로 5년 안에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의 기술혁신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역시 가장 먼저 2030세대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광형 카이스트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는 “인공지능 시대에는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고 소비가 감소하며 부의 집중 현상은 더욱 심해지게 된다. 머지않아 실업률이 30%에 이르면서 사회 갈등과 불안이 확대될 것이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청년 일자리 확대를 넘어 2030세대의 근로소득 위축을 줄이려는 정부의 정책은 대체로 ‘청년 일자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아낀 돈으로 신입사원 채용을 늘리는 방안이다. 이명박 정부가 신입사원의 임금을 깎았다면, 박근혜 정부는 그 대상을 중장년층으로 바꿨을 뿐이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쪽도 방법론만 다를 뿐 목표는 마찬가지다. 시민단체들이 기업의 내부 유보금을 줄이도록 해 투자와 고용 확대에 쓰도록 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노동자가 아닌 기업의 주머니에서 청년 고용 재원을 마련하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청년의 일자리 문제와 그에 따른 근로소득 퇴조 현상이 우리나라에선 적어도 10년 남짓, 선진국에선 수십년 동안 진행됐다는 점에서 완전한 해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기술 진보가 초래한 ‘일자리 파괴’는 고려돼 있지 않다. 일자리 확충 노력의 한계를 메울 수 있는 또다른 대책이 함께 필요한 이유다.
이런 고민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가 청년수당이다. 근로소득을 늘리는 데만 골몰할 게 아니라 이전소득을 늘려 2030세대의 가계소득을 키워주자는 취지다. 불평등 연구의 권위자인 앤서니 앳킨슨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불평등을 넘어>란 저서에서 청년수당을 ‘기초자본’과 ‘사회적 상속’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과거와 달리 실업과 불안정 일자리 등으로 부실해지는 근로소득의 종잣돈 구실을 청년수당이 보완할 수 있고, 이런 수당이 부모의 상속·증여 등 사적 재원이 아닌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 예산에서 지급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앳킨슨 교수가 제안한 청년수당 규모는 1만파운드로, 우리돈 1600만원 수준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상속 등 이전소득 증가율 절반 수준
‘일’에 기댄 청년세대 소득에 큰 타격 노조 보호 못받고 영향력 적어
고용 불안 땐 청년층부터 희생양
세계적 청년실업률 증가로 나타나 인공지능 등 기술 진보가 초래한
일자리 대체·파괴도 위협 요인 일자리 확대 정책만으론 한계 뚜렷
“앞선 세대 자산 고루 상속 위해선
세금으로 청년수당 지급해야” 주장도 ■ 2030세대 근로소득의 퇴조 본격화 통계청은 가계소득을 근로·사업·재산·이전 등 4가지 소득원으로 나눠 조사한다. 27일 <한겨레>가 통계청이 한 ‘가계동향 조사(2인 이상 전국 가구)’ 13년치를 분석했더니 근로소득은 더디게 늘고 있지만, 이전소득은 빠르게 증가했다. 해당 통계가 작성된 2003년부터 2015년까지 근로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4.8%였다. 반면 이전소득 증가율은 이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8.0%였다. 일을 해서 벌어들인 소득보다 부모나 자녀 등 타인한테 넘겨받은 소득(사적이전소득) 또는 국민·기초연금 등 공적 연금 소득(공적이전소득)이 가계소득에서 갖는 위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물론 지금까지는 근로소득의 비중이 70%가량으로 압도적이다. 그러나 지난 12년간의 소득원별 차별화된 증가 흐름이 지속·강화될 경우 가계소득 내 근로소득의 비중 하락은 시간문제에 가깝다. ‘근로소득의 퇴조’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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