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 선임기자의 ‘이로운 경제’
새누리, 한국판 양적완화 추진 vs 더민주, 부작용 우려 반발…한은은 '시큰둥'
4·13총선의 최대 수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꼽고 싶다. 재정경제부·정보통신부 장관과 3선 국회의원을 지낸 뒤 공직에서 물러났던 강 위원장이 이번 총선 덕에 화려하게 ‘부활’했으니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과 민주통합당 출신이란 정체성을 버리고 새누리당으로 말을 갈아탄 그에게 총선 이후 여권에서 어떤 보상을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경제관료로서 쌓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지금이 그에게는 또하나의 ‘봄날’일 것 같다. 그의 변신이 옳으냐 그르냐는 별개로.
강 위원장이 부활한 데는 ‘한국판 양적완화론’이 한몫했다. 양적완화는 미국연방준비제도,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영국은행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이 세계금융위기 이후 폈거나 펴고 있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일컫는다. 이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 가까이 내린 뒤, 더는 기준금리 조정에 기댈 수 없게 되자 이를 시행했다. 장기 국·공채 등을 사들임으로써 시중에 돈을 풀어 소비와 투자에 긴요한 시장금리의 하락을 꾀했다. 이런 정책을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나선 게 강 위원장이다. 3월29일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채권과 주택담보대출증권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양적완화를 추진하도록 하자는 공약을 제시한 것이다. 산업은행채권은 기업 구조조정을, 주택담보대출증권은 가계부채 문제 해소를 뒷받침하기 위해 매입한다는 구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곧바로 ‘현실성도 타당성도 없는 정책’이라는 등의 비판을 제기하며 논란이 빚어졌다. 이를 계기로 한국판 양적완화는 중요한 선거쟁점의 하나가 됐고 강 위원장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이만하면 강 위원장이 ‘대박’을 터뜨린 셈 아닌가. 정책대결이 실종된 선거라는 지적을 누그러뜨리는 데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본다.
사실 양적완화를 검토할 때라는 얘기는 그동안 몇몇 전문가가 한 바 있다. 공론화의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나 또한 이런 얘기에 상당부분 공감한다. 부실기업과 가계부채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고 우리 경제가 크게 좋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서다.
그런데 이런 양적완화론을 두고 야당의 반응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은행의 대응이 실망스럽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3월30일 기자간담회에서 의례적인 언급을 한 게 공식 반응의 전부다. “한국은행이 구조조정 그리고 가계부채,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하는 취지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특정 정당의 공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정치적 시비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이 총재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사안의 무게를 고려할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발언이다.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것도 그렇다. 이런 ‘무반응’으로 생산적 논의가 이뤄질 수는 없다.
한은이 현안 해결에 선제적으로 나섰다면 정치권에서 양적완화 얘기가 나왔겠는가. 한은이 화를 자초한 셈이다. 양적완화를 시행했거나 시행중인 중앙은행들이 정치권 압박이 없는데도 행동에 나선 것과 대비가 된다. 한은은 기준금리 조정에서도 소극적이다 보니 실기한다는 비판을 종종 받았다. 이 총재가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 정책이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보면서 한은도 완화기조를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이런 점들을 일러준다. 하지만 이 총재는 원화가 이들 국가 통화와는 달리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그러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6개국(지역) 가운데 스웨덴이나 스위스, 덴마크, 헝가리 통화는 기축통화라고 할 수 없어서 이 총재 얘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무튼, 한은이 양적완화 논의 등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 좋겠다. 새누리당이 20대 국회 개원 100일 안에 한은법 개정안 발의 등을 통해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힌 만큼 계속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한은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한은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으면서 통화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여기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경 선임기자jaewoo@hani.co.kr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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