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면서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발걸음도 다시 빨라졌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당면한 ‘저성장 고착화’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일본과 유럽연합 등 일부 국가가 취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도 사실상 용인하기로 했다.
구조 개혁 우선론과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 강화론 사이의 균형추가 후자로 급격히 기울어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재정 여력이 있는 독일 등이 이런 합의를 따를 가능성은 커보이지는 않는다.
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이하 G20 경제회의)는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은 “우리는 내수 진작을 위한 재정정책 등 G20 회원국들이 취하고 있는 성장과 시장 안정을 뒷받침하는 정책 조처를 환영한다”며 “통화정책만으로는 균형있는 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 우리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 신뢰 제고를 위해 재정정책을 유연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G20 경제회의는 나아가 재정 정책을 구조개혁 우선 분야 중 하나로 선정했다. 국가별 재정 운용 원칙과 평가지표를 마련한 뒤 오는 7월 G20 경제회의에 보고하기로 합의했다. 민경설 기획재정부 거시협력과장은 “재정 지출의 효율화 등 재정 운용을 좀더 성장 친화적으로 개편하자는 취지”라며 “세입 정책과 세출 정책을 모두 아우른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열린 G20 경제회의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정책이 이렇게 강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일본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제로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 조처까지 취할 정도로 사실상 통화 정책 여력이 약화된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G20 경제회의에 실무자로 참여한 진승호 기획재정부 국제금융협력국장은 “주요국의 통화정책 여력이 소진되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의 총수요를 늘리기 위해 재정 여력이 있는 국가에 재정 지출을 더 늘리라는 게 이번 회의의 주된 논의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회의 결과는 이번 회의를 앞두고 구조개혁 우선론을 편 독일과 재정 지출 확대와 완화적 통화정책 등을 앞세운 미국·일본·국제통화기금(IMF) 등의 대립 구도에서 미국 등이 기선을 제압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제통화기금의 모리스 옵스펠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2일 세계경제전망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커가는 세계 경제의 하방 압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을 계속 완화적으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사회간접자본이나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재정 지출을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구조개혁도 재정 확대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합의가 어느 수준까지 실행될지는 불투명하다. 구체적인 평가 지표까지 만들기로 하는 등 이행력을 강화한 듯이 보이나, 정작 재정 여력이 있는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재정 지출에 나설 가능성이 낮은 탓이다. 재정 여력이 있는 대표적인 국가인 독일은 올해 재정 지출 확대는 커녕 재정 수지를 균형에 맞춘다는 목표를 세워 놓은 상태다. 진승호 국장은 “선언문에도 각 국의 특수한 환경을 고려해 (합의 사항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재정 여력이 있는 국가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미완의 합의문이라는 뜻이다.
이외에 G20 경제회의는 통화·재정 확대에 따른 부작용인 금융시장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국가별 외환보유액 확충, 국가간 통화 스와프(교환) 확대, 지역 금융안전망 강화와 같은 금융안전망을 양적·질적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또 최근 유명인사들의 조세 회피 의혹이 담긴 정보가 담긴 파나마 법률회사의 내부 문서 공개를 계기로 국제 조세 회피 방지를 위해 국제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워싱턴/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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