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 선임기자의 ’이로운 경제’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에 한몫한 빈부 격차…우리도 녹록잖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10명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며칠 앞두고 발표한 서한 내용은 여전히 타당한 것 같다. 케네스 애로와 로버트 솔로, 앵거스 디턴 등 쟁쟁한 경제학자들이 공동 서한에 이름을 올렸다.
“… 우리는 영국이 유럽연합에 있을 때 경제적으로 더 나을 것이라고 믿는다. 영국 기업들과 노동자들은 단일시장에 전면적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 다른 나라들뿐만 아니라, 미국·캐나다·중국과 같은 중요한 시장들과 무역을 하는 데 큰 불확실성을 낳을 것이다. 일회적인 사안이긴 하지만 브렉시트 효과는 수년간 지속될 것이다. 경제적 논거는 유럽연합 잔류를 확실히 지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권고는 힘을 쓰지 못한 채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됐다. 그러면서 만만치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세계금융시장에 난기류가 조성됐고 저성장 추세의 세계경제에 적잖은 악재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영국 국민들이 이런 결정을 한 것을 두고는 여러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과도한 세계화에 대한 반발이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1980년대 ‘금융 빅뱅’을 통해 금융시장 개방의 깃발을 높이 든 이래 영국은 경제 국경을 낮추는 데 앞장서왔다. 하지만 이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긴 했으나 결국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 불평등을 빚는 데 한몫했다. 세계화로 빈부 격차 확대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의 응어리가 이번에 역사 물줄기를 돌린 셈이다.
그러니 세계화, 특히 불평등이 다시 세계적으로 중요한 관심사가 된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야 3당 대표가 지난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모두 불평등 또는 격차 해소를 강조하고 나선 게 이를 말해준다. 접근방식에서 다소 차이가 나긴 하나 불평등과 격차 확대를 그대로 두고서는 성장이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실제로 불평등과 격차가 크게 확대돼 경종을 울린 지 꽤 됐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양상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참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한번 살펴보는 게 의미가 있을 듯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최근 유용한 자료를 내놓았는데, 비정규직 임금이 지난 3월 현재 정규직의 48.7%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정규직은 국민연금·건강보험 가입률과 퇴직금·상여금 적용률이 97~100%인 반면, 비정규직은 32~40%에 그친다. 전체 노동자의 43.6%나 되는 비정규직이 이런 차별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넷째)을 비롯한 경제부처 장관들이 28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정부가 28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들여다보니 ‘민생 안정’ 대책의 하나로 ‘양질의 일자리와 사회통합을 위해 부문간 격차 축소 노력 강화’라는 항목이 눈에 띈다. 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하도급, 대-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를 줄이겠다며 여러 세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성과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난 대책을 계속 추진하거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대책을 새로 내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료비·주거비·교육비·양육비 경감 방안을 더해도 이런 평가가 크게 달라지기는 어렵다.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면 격차가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이 역시 희망사항에 그치지 않을까 싶다. 정부 계획대로 파견근로 확대 등이 이뤄지면 비정규직의 처지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게다가 정부는 불평등과 격차 해소 등에 긴요한 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지가 없다. 전문가와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설문조사 결과와는 딴판이다. 전문가와 일반국민 모두 경제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소비 여건 개선과 기업투자 활성화가 중요하며, 특히 소비 여건을 개선하려면 임금 상승, 가계소득 증대세제 확대 등 소득 여건 개선(전문가 61.2%, 일반국민 58.1%)이 가장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그렇지만 정부는 가계소득 증대세제의 운용 성과를 평가한 뒤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언급만 하고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정부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것인가.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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