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는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 정도의 작은 섬이다. 여의도가 2.94㎢(89만평), 가파도가 0.85㎢(26만평)다. 한국의 최남단인 마라도와 제주도 모슬포항 사이에 있다. 그런데 이 작은 섬에서 ‘에너지 자립’이라는 혁명적인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가파도가 ‘에너지 자립 섬’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1년이다. 가파도가 시범사업 무대로 선정된 것은 섬의 규모가 작고 풍력이나 태양광을 얻기가 쉬우며 육지에서 너무 멀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에는 모두 143억원이 투입됐다. 250㎾짜리 풍력발전기 2대와 함께 49곳에 174㎾ 규모의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됐다. 또 에너지저장장치와 시스템 운영센터, 전력변환장치, 원격 계량기도 설치됐다. 이렇게 생산한 전기로 각 가구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전기차 4대, 해수담수화 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 섬 사업이 시작된 뒤 주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가파도의 인구는 97가구, 178명인데, 65살 이상 노인 가구를 제외한 49가구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사업이 시작되기 전 여름에 한 달에 12만~13만원이었던 전기요금은 이제 2만~2만5천원으로 5분의 1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2008년 1만명, 2011년 4만명 수준이었던 관광객은 2015년 11만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가파도의 진명환 이장(55)은 “초기엔 신재생에너지의 효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기요금이 줄고 관광객은 늘어나 이중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4월23일부터 7월12일까지 가파도의 누적 에너지 자립 비율은 42%다. 풍력이 32%, 태양광이 10%다. 5월에는 50%를 넘기도 했으나, 장마철이 되면서 비율이 떨어졌다. 나머지 58%는 아직 디젤발전기에서 나온다. 풍력과 태양광을 합친 발전 용량은 하루 674㎾로 이미 가파도의 하루 평균 전력 수요인 142㎾, 최대 수요인 230㎾를 훌쩍 넘는다. 그러나 풍력과 태양광은 안정적으로 생산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3.86㎿h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남는 전력을 저장하는데, 이것으로 최대 8시간 정도만 사용할 수 있다.
에너지 자립도 42%가 보여주듯 가파도의 성공은 절반에 불과하다. 앞으로 자립도를 100%까지 높여야 진짜 ‘에너지 자립 섬’이 될 수 있다. 이 사업을 추진해온 한전의 황우현 에너지신산업단장은 “에너지저장장치를 현재의 2배로 늘리면 최대 3일까지 공급할 수 있고 자립도를 100%로 높일 수 있다. 그러려면 현재의 저장장치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가파도에서 시작한 에너지 자립 섬 사업은 이미 확산되고 있다. 2차 사업인 전남 진도 가사도는 신재생에너지 발전기 규모를 늘려 자립도 100%에 도전하고 있고, 3차 사업인 울릉도는 가파도, 가사도보다 훨씬 큰 인구(1만여명) 규모에서 에너지 자립을 실험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 자본을 유치해 덕적도 등 5개 섬에서 에너지 자립 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부와 제주도는 2030년까지 인구 60만명의 제주도 전체를 ‘탄소 없는 에너지 자립 섬’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미 구좌읍 일대에서 35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180㎿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갖췄다. 황 단장은 “제주도에서 성공하면 그 성과를 점차 육지의 도시에도 확산시킬 계획이다. 전기차와 가정용 태양광 발전, 저장장치 등이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파도/김규원 기자
che@hani.co.kr, 사진 한국전력 제공
<용어설명> ‘
에너지 자립 섬’이란 에너지를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방식으로 스스로 생산해 수요의 100%를 공급하는 섬을 말한다. 통상 섬은 주변 지역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에너지 자립 사업의 시범 지역이 된다. 이렇게 작은 지역에서 자급자족되는 에너지 자립 시스템을 ‘
마이크로 그리드’라고 한다. ‘
스마트 그리드’는 전기의 생산, 운반, 소비에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해 효율성을 높인 전력망과 시스템을 말한다. ‘
그리드’는 전력망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