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초과 세수 활용한 추경 편성안 발표
조선업발 불황 완충 목적
국책은행에도 현금 출자키로
SOC예산 0원, 국가채무는 줄어
조선업발 불황 완충 목적
국책은행에도 현금 출자키로
SOC예산 0원, 국가채무는 줄어
정부가 나랏돈을 풀어 조선업발 대량실업 충격 완화에 나선다. 존폐 위기에 내몰린 조선업체에 일감을 주고, 이미 일자리를 잃었거나 실직 위기에 놓인 조선업체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다른 업종에 전직하는 데 도울 수 있는 직업훈련 등에 재정을 붓는다.
정부는 22일 이런 내용을 담은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을 편성해 다음주 중 국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2차관은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경우 대량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추경 편성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조선업종 지원을 위해 나랏돈을 푸는 방식은 발표대로 추경 편성이다. 추경은 애초 세웠던 예산의 수입과 지출을 변경한다는 뜻이다. 이번 추경 편성으로 애초보다 더 늘어나는 정부 재정 지출 규모는 11조원이다.
■ 추경 11조, 어디에 쓰이나? 더 쓰기로 한 나랏돈 11조원 중 1천억원이 조선업체에 일감 지원용으로 배정됐다. 관공선이나 해경함정, 군함 등 모두 61척을 올 하반기에 신규 발주한다. 이번 예산안에는 설계비 정도만 반영됐기 때문에 지원 규모가 적어 보인다. 이에 대해 박춘섭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신규 발주 선박의 총 사업비는 1조4천억원”이라며 “2017년 본예산 등 향후 예산이 순차적으로 사업비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1조4천억원어치의 일감을 조선업체에 준다는 뜻이다.
총사업비 기준으로 8천억원은 중소 조선사에, 6천억원은 현대중·삼성중·대우조선 등 대형 조선 3사에 흘러갈 예정이다. 다만 어떤 회사가 무슨 일감을 받는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경쟁 입찰을 통해 일감을 분배하기로 해서다. 구윤철 기재부 예산총괄심의관은 “경쟁 입찰을 진행키로 한다는 것은 이 과정을 통해 중소 조선사들 사이에서 옥석을 가린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추경안에는 국책은행에 대한 자본확충 비용도 포함됐다. 조선업에 빌려준 돈을 떼일 위기에 처하면서 동반 부실 위험이 커진 국책은행에 나랏돈을 넣어 재무 건전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수출입은행에 1조원, 산업은행에 4000억원의 현금이 들어간다. 국책은행의 자본이 넉넉해지면 대출 여력도 커지고 자금 조달 비용도 줄어들게 된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도 모두 3천억원의 나랏돈을 넣기로 했다. 이 역시 중소기업 등에 좀더 싼 값에 대출 보증을 해주기 위해서다.
대량 실업 위기에 놓인 조선업 노동자를 지원하는 데는 2천억원을 쓴다. 일단 숙련노동자 1만명에겐 휴직·휴업 수당을 늘려주고 직업훈련비를 지원한다. 또 유사 업종을 위한 이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교육 훈련이나 중소기업 기술 사업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나랏돈은 모두 800억원 수준이다. 비숙련 인력은 전직 훈련이나 재취업 지원 용도로 나랏돈을 쓰기로 했다. 재취업 영역에는 해외 취업과 귀농·귀어도 포함돼 있다. 대상은 2만6천명, 배정된 예산은 100억원 남짓이다. 조선업체에 일하지는 않으나 그 주변지역의 일자리 사정 악화를 막기 위해서도 400억원 남짓 돈이 편성됐다.
이외에 지역경제 활성화 명목으로 모두 2조3천억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보강용으로 3조7천억원이 배정됐다. 여기에는 농어촌마을 하수도나 노후 저수지 개선 비용 등이 포함됐다. 구윤철 심의관은 “지자체에 내려가는 3조7천억원 중 1조9천억원은 지방에서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누리과정 재원으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야당과 일부 지자체에선 누리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재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누리과정 비용을 중앙정부가 낼 것을 요구해왔다.
■ 기대 효과는? 정부는 추경 편성으로 일자리가 6만8천개가량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조선업 밀집 지역 등을 중심으로 직접 일자리가 4만2천개, 직업훈련과 창업 등을 통한 간접 일자리가 2만6천개 늘어난다고 봤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 보증과 보험도 12조원 수준으로 확대된다고 정부는 밝혔다. 경제성장률(실질)도 올해와 내년에 각각 0.1~0.2%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는다고 정부는 분석했다.
다만 추경 편성의 계기가 된 대량실업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정부는 그 추계를 내놓지 못했다. 이호승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추경으로 실업률이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란 <한겨레>의 질문에 대해 “현재로서는 취업자수 변화만 예측할 수 있을 뿐 실업률에 얼마만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익집단인 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해, 추경을 하지 않을 경우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내년까지 5만6천~6만3천명 정도의 인력이 감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추경안이 국회에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국회 심의 과정이 길어지면서 재정 집행이 늦어지면 그만큼 기대한 효과도 반감된다는 것이다. 일단 정부는 26일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다음달 중순까지는 국회에서 승인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구윤철 심의관은 “이번 추경은 국채를 발행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거의 추경과는 달리 집행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관건은 국회 심의 속도”라고 말했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국회 심의는 이르면 다음달 초부터 시작된다.
■ 색다른 추경 이번 추경은 과거 추경과는 사뭇 다른 점이 여럿 있다. 일단 나랏돈을 더 쓰기로 했으나 국가채무는 늘지 않는다. 통상 추경 재원은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조달하기 때문에 추경 편성은 국가채무 증가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추경 재원을 초과 세수를 기반으로 한 터라 채무는 늘지 않는다. 애초 예상한 수입보다 10조원 가까이 걷힐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초과 세수 중 1조2천억원은 국채 상환에 쓰기로 하면서 국가채무비율(국가채무÷경상 국내총생산)은 0.8%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내다본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담기지 않은 것도 이번 추경의 색다른 점이다. 추경은 통상 경기 부양 목적을 갖고 있는 터라 그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 지출 확대가 그간 추경의 핵심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엔 사회간접자본 쪽은 단 한 푼도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 구윤철 심의관은 “이번 추경은 경기 부양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고, 과거만큼 사회간접자본 지출의 경기 부양 효과도 떨어지는 점이 고려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회간접자본 예산을 추경에 반영할 경우 자칫 국회 통과가 지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용으로 앞다퉈 사회간접자본 예산을 요구하며 예산 심의가 늦어진 전례가 많다.
끝으로 이번 추경은 정부가 주도했다기보다는 야당의 요구로 편성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 추경은 정부가 강하게 추진하고 야당은 세금 낭비·채무 확대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모습이 반복돼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는 머뭇거린 반면 국민의당이 적극적으로 추경 편성을 요구했다. 정부 내에 추경 의사 결정이 비교적 늦은 시기에 이뤄진 것도 이런 구도 변화와 관련이 깊다.
김경락 노현웅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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