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예산안〕
400조원 넘었지만 수입보다 지출 적어
경제는 4% 성장, 지출은 0.5%만 확대
예산당국, 아전인수식 확장재정 강변
차관·예산실장이 서로 다른 말도
400조원 넘었지만 수입보다 지출 적어
경제는 4% 성장, 지출은 0.5%만 확대
예산당국, 아전인수식 확장재정 강변
차관·예산실장이 서로 다른 말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정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예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시설투자와 민간소비, 수출 등 민간 부문의 부진을 메워주거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재정의 적극적 구실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편성된 본예산은 이런 기대를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30일 정부가 발표한 ‘2017년 예산안’도 재정 건전성 관리에 방점이 찍힌 사실상 ‘긴축 기조’로 편성됐다.
2017년 예산안을 보면, 내년 총지출 규모는 400조7천억원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사상 처음으로 재정지출이 400조원 벽을 돌파한 것이다. 지난 24일 당정 협의 직후 새누리당이 내년 예산 총지출 규모를 공개했을 때 일부 언론이 내놓은 ‘슈퍼 예산’이라는 평가도, 사실 ‘사상 첫 400조원 돌파’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모로 따져볼 때, 내년 예산안은 슈퍼 예산은 커녕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확장 예산’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추경 통과를 전제로 했을 때 올해보다 늘어나는 내년 총지출 규모는 2조1천억원에 그친다. 증가율로는 0.5%이다. 이는 정부가 예상하는 내년 경상성장률 4.1%에 크게 못 미친다. 나라 경제가 불어나는 만큼도 예산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측면에서 봐도 내년 예산은 ‘확장 예산’은 커녕 ‘긴축 예산’에 가깝다. 내년 재정수입은 414조5천억원으로 재정지출 400조7천억원보다 14조원 가까이 많다. 정부가 건강보험·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의 보험료와 세금은 왕창 걷으면서도 지출은 쥐꼬리만큼만 늘리는 ‘흑자 예산안’(통합재정수지 기준)을 짰다는 뜻이다. 정부가 예산을 짤 때 잣대로 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재정적자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값)도 올해 2.4%(잠정)에서 1.7%로 줄어든다. 이는 저성장 덫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일본 등 주요국들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증가를 감수하면서 나랏돈을 풀어온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우리 국가채무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채무비율 평균치(88.3%)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러다보니 ‘확장 재정’이라는 자평을 해 온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도 서로 충돌한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2차관은 내년 예산 기조에 대해 “올해(2016년 본예산)보다는 재정 건전성에 신경을 썼다”라고 말한 반면, 박춘섭 기재부 예산실장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몇 해만 빼면 총지출 증가율과 경상성장률 간의 차이가 내년 예산안이 가장 적다”고 말했다.
송 차관은 내년 예산안이 올해 예산보다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말한 것이나, 박 실장은 내년 예산안이 가장 확장적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두 발언은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예산안 사전브리핑 때 나왔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두 명의 예산 담당 최고 공직자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 셈이다.
심지어 ‘제 논에 물대기’식 설명까지 내놓는다. 송 차관은 “재정당국은 추가경정예산의 경우 이듬해 쓸 예산을 앞당겨 쓰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추경을 포함하면 내년 예산은 매우 확장적”이라고 말했다. 국회에 계류중인 11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내년 예산안에 더하면 총지출이 올해 본예산보다 13조원 남짓이나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이는 올해 예산을 너무 짜게 편성했다가 뒤늦게 추가 예산을 편성하게 된 상황을 외면하는 발언이다.
정부의 공식 문서에는 재정 기조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 “내년 예산안은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0%선에서 유지하는 한계 속에서 예산을 편성했다는 것으로, 재정의 적극적 구실을 위해 빚을 내는 일은 최소한으로 줄였다는 뜻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확장적 재정 운용을 각국에 줄곧 권고해온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런 재정 운용에 대해 “빚 강박증”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초저금리 환경 영향으로 이자 상환 비용은 줄어든 여건은 고려하지 않은 채 채무 증가 자체에만 연연해 하는 일부 국가를 겨냥한 비판이다. 지난 4월 이 기구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독일과 함께 우리나라를 콕 짚어 재정을 적극적으로 운용해도 되는 나라라고 언급한 바 있다.
빚 강박증에 가까운 우리 정부의 재정 운용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세 차례나 추경 편성을 한 것 말고도 더딘 걸음을 하는 소득불평등 개선 속도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전 소득 기준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소득불평등 수준이 낮은 편이나 세금 등을 빼고 복지 수당 등을 더한 뒤의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는 불평등 정도가 높은 나라다. 소극적 재정운용이 소득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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