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87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공백이 커지는 가운데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만은 중심을 잡자”며 어수선한 분위기 다잡기에 나섰으나 관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유 부총리는 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와 정부세종청사를 연결하는 영상회의 방식으로 기재부 ‘확대간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가 열린 것은 지난달 17일 이후 한달 남짓 만이다. 이달 초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으로 지명된 이후 유 부총리는 과거 매주 하다시피 한 확대간부회의 주재는커녕 세종청사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 부총리는 “어려운 시기에 다시 한번 자세를 가다듬고 기재부가 해야 할 과제를 점검해야 한다. 대내외 상황이 매우 엄중하지만 기재부가 중심을 잡고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경제와 민생을 잘 보살펴 달라”라고 말하며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다는 뜻을 가진 한자숙어 ‘견위수명’(見危授命)을 인용하기도 했다.
최상목 1차관까지 게이트 국면에 휩쓸려가면서 크게 흔들리는 기재부 구성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다. 최 차관은 과거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을 때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의 지시로 ‘미르 재단’ 설립에 관여한 것으로 검찰 조사로 최근에 드러난 바 있다.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유 부총리의 의도는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부총리는 참 성품이 유하신 분 같다”고 말했다. 대외적으로 공개된 유 부총리의 발언이 표현은 강했으나 실제 회의장에선 별다른 결연함은 보이지 않았다는 취지다. 또다른 기재부 과장급 간부는 “후임자까지 지명된 마당에 부총리 마음도 편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한편 일부에선 “국정이 혼란한 와중에도 경제만큼은 관료가 중심을 잡고 책임져야 한다”라는 식의 발언이 불편하다는 여론도 관가 안팎에선 일고 있다.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간에 현 정부 공직자들도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나”라며 “수치심을 가져야 할 공직자들이 외려 혼란을 수습하려고 한다. 최소한 정무직 고위공무원은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