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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국민연금, 이대로는 안된다

등록 2016-11-30 13:50수정 2016-11-30 20:33

[이경의 이로운 경제]
삼성그룹 합병 찬성 관련한 의혹으로 위기…제도 개혁 필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8월 남녀 직장인 950명을 대상으로 ‘직장인이 기대하는 노후생활’을 조사했다. 그 결과 노후 자금을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한 직장인이 38.6%로 많지는 않았다. 이들이 노후 자금을 준비하는 방법(복수 응답)으로는 저축(61.6%)이 가장 많고, 다음이 국민연금(52.6%), 개인연금(45.2%), 보험(39.2%) 순이었다. 미흡하긴 하지만 국민연금이 노후 대책으로 일정한 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자들도 국민연금에 가입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전북 전주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사옥.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사옥. 연합뉴스
국민연금 가입자가 8월말 2177만명에 이르러 시행 첫해인 1988년 12월말 443만명에 견줘 거의 5배로 늘어났다. 기금 적립액은 543조원으로 규모 면에서 세계 3대 연기금의 하나가 됐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로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연금은 소득분배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빈곤율과 지니계수가 조금이나마 낮아진 데는 국민연금의 몫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이 없었다면 소득불평등 추세가 더 심해졌을 것이다.

지금 국민연금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소용돌이에 휘말려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삼성그룹 로비를 받은 청와대(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의 지시에 따라 국민연금이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지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청와대가 특정 재벌을 위해 국민연금 내부 절차를 무시한 채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가 된다. 국민연금은 자율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고 수탁자로서 국민들이 낸 돈을 성실하게 관리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국민연금은 의혹에 대해 나름대로 해명을 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국민연금의 삼성그룹 합병 지지 여부 결정 방식이 2주일 전에 있었던 에스케이 그룹 합병 때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에스케이그룹 합병과 관련해 내부 의사결정 기구인 투자위원회가 아닌 외부 전문가들로 이뤄진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찬성 여부를 결정토록 했다. 사회적 논란이 큰 사안의 경우 때때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결정을 맡겨왔는데, 삼성그룹 안건은 투자위원회에서 직접 처리한 것이다. 삼성그룹 건이 에스케이그룹 건에 견줘 의미나 파장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투자위원회의 자체 결정 과정도 앞선 사례들과는 달랐다.

또한 합병기업의 미래가치 평가에서 삼성그룹이 제시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의구심을 산다. 당시 투자위원회 회의에서도 낙관적 평가라며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 여부를 재무적 투자자 관점에서 판단했다고 한 것도 그렇다. 이는 얼핏 보면 그럴 듯하지만 삼성그룹 합병 건이 지배구조 조정, 곧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긴요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원칙의 하나로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 등 책임투자 요소를 고려하여 행사한다”고 밝힌 것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연금은 에스케이그룹 합병 건에서 보듯 그동안 의결권 행사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해왔다. 의결권 행사 건수가 2010년 2153건에서 지난해 2836건으로 늘고, 반대 건수도 8.1%에서 10.1%로 늘었다. 하지만 삼성그룹 합병 건으로 빛이 바랬다. 나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삼성그룹 사안을 두고 공감하기 어려운 결정을 했으니 말이다.

이제 국민연금의 삼성그룹 지지 결정은 특검 수사를 받는 게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나온 의혹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참에 제도 개혁도 해야 한다.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투자위원회 회의록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 기관투자가들의 주주권 행사 원칙을 담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어서 제정해 시행해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을 공공주택 건설에 활용하는 방안 등도 검토해야 한다. 이는 작년 총선에서 공약으로 거론된 것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취약계층의 연금보험료를 지원하는 문제 또한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 국민연금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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