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집중적 압박에도 모르쇠·동문서답
“특검 수사 고려한 전략일 것”
집중적 압박에도 모르쇠·동문서답
“특검 수사 고려한 전략일 것”
‘실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재용(48)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실상 첫 데뷔 무대는 압박 청문회가 됐다. 몸을 숙여 방어전을 치르는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핵심 사안에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했다. 여론의 공분보다는 임박한 특별검사 수사 등을 염두에 두기 때문으로 보인다.
6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이 부회장은 그동안 웃는 모습 등 ‘연출’된 장면 외에 그의 경영관이나 식견을 대중이 알 기회가 거의 없었다.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의 첫 기자회견은 지난해 5월23일에야 이뤄졌다. 이 부회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에 삼성서울병원의 책임이 큰 것으로 드러나자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면모를 파악하기엔 부족했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 포화를 받은 이 부회장의 말과 태도는 국내 최대 그룹을 이끄는 리더의 소통 전략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이 부회장은 최대한 ‘안전한 길’을 택했다. 의원들 말을 경청하고, ‘반성’이라는 표현을 거듭 쓰며 저자세로 일관했다. 외우다시피 한 답변들을 내놨다. 동문서답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렇다 할 알맹이가 없는 말을 되풀이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송동현 밍글스푼 대표는 “사실로 드러난 것에는 감정적인 메시지로 송구하다고 하고, 그 외에는 몰랐다는 회피 전략을 쓰고 있다. 여기에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겠다는 미래에 대한 개선 의지를 더해 반복적으로 핵심 메시지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여론을 의식해 이미지 쇄신에 집중하기보다는 현실적 계산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등과 관련한 민감한 질의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이 같은 태도는 ‘특검까지 가는 상황에서 법적 자문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송 대표는 “이 부회장은 감정적인 표현으로 ‘송구’와 ‘불찰’을 붙이지만 팩트에 대해서는 확인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대표는 이 부회장의 소통 전략을 보며 ‘악당과 모자란 사람의 딜레마’가 떠올랐다고 했다. 모르쇠 태도로 일관하고 동문서답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역시 전략적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송 대표는 “반전시킬 수 있는 완벽한 전략이 없을 때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나쁜 악당이 되는 모양새보다는 ‘몰랐다’고 하는 게 상대적으로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추궁에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탈퇴하고 그룹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는 전향적 발언을 한 것은 핵심 메시지 중 하나인 ‘미래 개선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특히 청문회 진행 중 전경련에 대한 태도 변화는 투명성 요구 수용과 유연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이 부회장은 전경련 관련 질문에 처음에는 “앞으로 개인적으로는 활동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그 뒤에는 “전경련에 회비를 내지 않겠다”고 답했다. 최종적으로는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답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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