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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임기말 대기업 세금 깎아주기로 조세정책 유턴

등록 2016-12-27 14:50수정 2016-12-28 09:19

18개 세법시행령 개정안 뜯어보니
대기업에 혜택 쏠린 R&D와 사업화시설 투자 세액공제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 서비스업 적용한 효과도 비슷
고소득층 비과세·감면 폭 축소 기조는 그대로 이어져
‘우병우 방지법’…가족형 부동산임대업체 비과세 축소
27일 발표된 18개 세법 시행령 개정안은 현 정부가 임기 마지막해에 그간의 조세정책 기조를 크게 바꾸었음을 드러낸다. 애초 ‘비과세·감면의 축소’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함께 정부의 핵심 조세 정책 기조였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재벌 대기업에 대해서 만큼은 비과세·감면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다만 고소득자에 대한 비과세·감면 폭을 줄여나가는 흐름엔 변화가 없다. 이런 조세정책의 큰 틀은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세법 개정에서 정해진 것이다.

재벌에겐 세금 퍼주고 먼저 대기업 세금 공제가 크게 늘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신성장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할 때 적용되는 세액공제율을 종전 20%에서 30%로 올린 것이다. 연구개발 투자 세액공제의 일종인 ‘신성장동력·원천기술 연구개발 투자 세액공제’란 이름이 붙은 감면 제도다. 애초 이 제도의 공제율은 기업 규모에 따라 중소기업은 30%,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20%로 차등을 뒀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대기업·중견기업도 모두 최대 30%의 공제율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가령 대기업 ㄱ이 인공지능 분야에 1000억원을 내년에 투자할 경우 투자 금액의 30%인 300억원을 내야할 세금 총액에서 빼준다.

연구개발 투자 세액공제는 사실상 재벌 대기업을 겨냥한 세금 감면 제도에 가깝다. 중소기업은 연구개발 투자를 할 여력이 없어서 혜택을 받는 규모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2015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중소기업이 연구개발 투자로 감면받은 세액은 9400억원(1만8천곳) 가량이지만, 대기업은 이보다 두배에 이르는 1조8천억원(1400곳)이다.

정부가 신성장 산업으로 정한 분야도 대부분 재벌 대기업들이 뛰어든 분야다. 헬스케어·지능형 반도체·가상현실·인공지능·자율주행 자동차·수소전기자동차 등은 삼성·현대차·에스케이·엘지그룹 등 재벌 대기업이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해 투자를 늘리는 분야다. 물론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고 기업의 부진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재벌 대기업이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투자에 세금 감면을 추가로 더해주는 것이어서 논란은 불가피하다.

새로운 공제 제도도 도입한다. ‘신성장동력·원천기술 사업화 시설투자 세액공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신성장동력과 원천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공장을 짓거나 기계를 사는 데 투자할 경우 대기업은 투자금의 5%를 세액 공제해준다. 이밖에 씨제이(CJ) 등이 주도하는 영상콘텐츠 제작비용에 대한 세액 공제(공제율 10%)도 새로 도입된다.

정부는 또 제조업·건설업에 주로 적용되던 고용창출 투자 세액공제 적용 대상을 유흥주점을 빼고 대부분 업종으로 확대해, 씨제이와 신세계 등 서비스업종 주력 대기업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고소득자 과세는 강화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는 강화된다. 정부가 이번에 주로 손을 본 것은 금융소득이다. 고소득자의 대표적 재테크 수단이던 장기저축성보험에 대한 비과세 납입 한도를 대폭 깎았다. 올해 2월부터는 일시납은 1억원, 월납 기준(최소 5년 납입·10년 계약 유지)으로는 150만원까지만 만기 때 보험 차익에 매기는 세금을 면제해준다. 현재는 일시납 비과세 납입 한도는 2억원, 월납에는 별도의 한도가 없었다.

그러나 새롭게 도입한 비과세 월납 한도가 높다는 지적도 있다. 한달에 150만원씩 보험료를 내는 가구는 초고소득층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특히 월납 보험 계약이 40살 기준으로 통상 ‘15년납·25년 유지’ 유형이 많은 터라 비과세 납입 한도가 2억7천만원에 이른다. 다만 대형 보험사의 한 간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영국 등 다른 나라에선 훨씬 더 많은 세금 혜택을 준다. 노후 소득 보장에 대한 인식이 정부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파생금융상품 투자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한 과세 범위도 넓어졌다.

상장주식을 팔아 얻은 소득에 대한 과세 범위도 강화됐다. 한국은 개미들의 상장주식 매매 이익에 대해 과세하지 않고 대주주에 한해서만 세금을 매긴다. 그런데 과세 대상 대주주 기준을 확대하기로 했다. 내년 3월까지는 ‘지분율 1% 이상 또는 시가총액 25억원 이상’(유가증권 시장 기준)만 과세 대상이지만, 내년 4월부터는 ‘지분율 1%·시가총액 15억원 이상’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코스닥 대주주 기준도 소폭 확대됐다.

공익법인 규제 강화…‘우병우 방지법’ 도입 재벌그룹 대주주 일가가 공익법인에 계열사 주식을 기부한 뒤 지배구조를 강화·유지하는 수단으로 오용한다는 논란이 큰 가운데 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다. 2018년 1월부터는 주식을 비롯해 기부받은 재산가액의 1% 이상을 해마다 공익사업에 의무 지출해야 하는 것이다. 그간 공익법인들은 기부 재산을 운용해서 벌어들인 소득의 일부만 공익 사업에 쓰는 모습이었다. 이에 미국식 ‘의무지출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애초 정치권에선 공익법인에 기부된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정부는 물밑에서 의무지출 제도 도입을 검토해왔다. 다만 미국 제도가 정하는 의무지출 비율(5%)에 견줘 매우 낮은 비율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만나 “일단 제도를 도입해서 운용해본 뒤 별다른 부작용이 없으면 단계적으로 의무지출 비율을 상향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가족회사 구조로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기업을 운용할 때 세제 혜택이 줄어든다. 회사 명의의 차량 비용이나 접대비 등을 비과세 대상으로 비용 처리해주는 폭을 절반가량 줄였다. 이 개정안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가족회사 ‘정강’ 명의로 고급 외제차를 활용한 사실 등이 드러난 게 계기가 됐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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