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달 생활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2.8% 오르며 2012년 1월(3.1%) 이후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농축수산물에선 귤이 1년 전 보다 106.2%가 뛰었다. 양배추(91.5%), 달걀(43.1%), 닭고기(11.3%)도 많이 올랐다. 사진은 4일 서울시내 한 시장 모습.연합뉴스
한국 경제는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살)가 감소하는 등 급격한 인구 고령화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인구 고령화가 물가 상승률을 장기적으로 0.5%포인트 내외로 끌어내릴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한은은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보다는 정부의 구조개혁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권고를 내놨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구조개혁’이라는 당위론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강환구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장은 4일
‘인구구조 변화가 인플레이션의 장기 추세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고령화로 인한 물가 영향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통화모형’이란 분석 틀을 통해 인구구조 변화가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현재 물가의 정상 수준을 2.7%(2000~2015년 평균 물가상승률)로 가정할 경우 물가 상승률은 2021년까지 3.7%로 오름세를 탄 뒤 매년 평균 0.03%포인트 하락해 2060년엔 2.5%로 낮아진다. 또 현재 물가의 최적 수준이 1.4%(2012~2015년 평균 물가상승률)로 간주할 때는 2060년까지 매년 평균 0.01%포인트씩 떨어져 2060년 물가상승률은 1.1%로 추정됐다.
인구고령화가 장기 추세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영향. 시뮬레이션 1은 현재 정상 물가 상승률을 2.7%(2000~2015년 평균 물가상승률)로 전제한 경우, 시뮬레이션 2는 현재 정상 물가상승률을 1.4%(2012~2015년 평균 물가상승률)로 전제한 경우임.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활용함. 자료 : 한국은행
강 실장은 “여타 경제 변수들을 모두 제거한 채 인구구조 변화 자체가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봤다. 대략 2060년까지 매년 평균 0.01~0.03%포인트 수준의 물가상승률 하방 압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이 분석 결과를 한은이 현재 정하고 있는 물가안정목표(2.0%)에 적용하게 되면 2060년께 한국 경제의 물가상승률은 1% 중반 정도가 된다.
이번 연구는 인구 고령화에 따라 노동자 우위의 고용시장 환경을 만들어 실질임금이 오르고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국내외 주장에 대해 한은이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영국 중앙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찰스 굿하트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지난 2014년 발표한 논문에서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고령화는 노동공급을 줄여 실질임금은 오른다. 그에 따라 구매력이 커져 물가 상승률은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강 실장은 “한국에선 고령화에 따라 자산가격과 저축률, 실질임금 등이 모두 하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처방과 관련해, 보고서는 “인구 고령화와 같은 사회구조적 변화가 장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수요관리정책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정부가) 구조개혁 정책을 장기적 시계에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돈을 죄고 푸는 방식으로는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데 효과가 없거나 외려 부정적 결과만 낳을 수 있으니 정부가 다른 정책 수단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를 비롯한 대다수 전문가들은 노동·교육·공공 분야 등의 구조개혁을 통해 사회 전체적인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그러나 구조개혁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다, 구조개혁이 실패했을 때 한은은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특히 장기 불황으로 경제가 장기 경로에서 이탈하는 ‘이력 현상’을 우려하며 한은 역할론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조동철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선 기득권을 깨는 구조개혁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론에는 동의하지만 통화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입장에서 (개혁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 조정이 지극히 어렵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당위적 낙관론만 전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은 내에서도 구조개혁 우선론과 구조개혁이 부진할 경우 한은이 적극적 구실을 해야 한다는 서로 다른 입장이 함께 있는 셈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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