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더불어민주당, 바른정당, 정의당의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사회적 경제 정책제안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사회적 경제 활성화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다음주에 대통령이 되는 후보는 곧바로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씨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성장, 청년실업, 인구절벽 등 우리 경제가 맞닥뜨린 문제는 복합적이어서 시장과 국가, 성장과 복지의 이분법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경제 및 사회정책에 접근하는 생각의 틀을 전환해야 하는데, 사회적 경제는 이런 때 효과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언뜻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이 떠오르는 사회적 경제는 시장과 국가의 중간 지대에서 활동하는데,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 보육·요양 등 사회서비스 제공, 지역공동체 활성화 등에서 효과가 크다는 것이 여러차례 입증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조사한 것을 보면 사회적 기업은 일반기업보다 취약계층 및 저임금 집단의 임금이 높고, 내부 임금 격차가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생산과정에서 공정 분배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경제는 전세계가 눈을 돌리는 ‘포용적 성장’의 유력한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1일 워싱턴에 모인 세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은 모든 계층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는 포용적 성장이 향후 세계경제의 해답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아울러 7월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은행이 포용적 성장 달성을 위한 정책수단 분석 보고서를 내기로 했다. 이 보고서에서 사회적 경제는 포용성장의 주요한 수단으로 제시될 전망이다. 사회적 경제는 또 일의 성격, 노동 시간, 노동 형태가 급격히 변하는 디지털 기술 변화의 시대에 효율성이나 이익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일터와 경제를 만들 수 있는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그 중요성이 더해가는 사회적 경제는 새 정부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까?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60여 단체들의 모임인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는 19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현장에서 모아진 요구사항을 정리해 주요 정당에 정책화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3당이 답변을 했고, 지난달 24일에는 이들 정당의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적 경제 정책제안 협약식’을 열었다. 국민의당은 답변서를 보내는 대신 “공약집을 참고해 달라”고 했고, 자유한국당은 답변서를 보내지 않았다.
4월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바른정당, 정의당 정책본부장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사회적 경제 정책제안 협약식.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연대회의가 대통령 후보에게 제안한 핵심 정책 과제는 3가지다. 첫째, 대통령 직속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설치할 것. 둘째, 내실있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제정할 것. 셋째,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하도록 금융, 공공조달 같은 법·제도를 정비할 것 등이다.
대통령 산하 사회적경제위원회 설치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국정 최고책임자의 관심과 의지를 보여주고, 관련 정책을 통합적으로 수립해 힘있게 집행하자는 뜻에서 제안했다. 산하에 상임위원회와 사무국을 두고 집행하는 기능을 가진 정부의 행정위원회이지만,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운영을 원리로 하는 사회적 경제의 특성상 상임위원회 구성 등에서 정부와 민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김대훈 연대회의 정책위원장은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이 인허가나 지원을 받으려 해도 지자체마다 정책이 다르고 정부 부처 간에도 정책 기조가 달라 큰 여려움을 겪고 있다”며 “사회적경제위원회를 통해 정권 초기에 종합적인 정책 기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사회적 경제 활성화와 관련된 계획 수립, 지원, 금융, 협력의 근거와 위상을 법률로 부여하자는 뜻에서 제안됐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19대 국회에 처음 발의됐으나 관련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이 필요하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넓었고, 여야 가리지 않고 많은 국회의원이 발의에 동참했으나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사회주의” 운운하며 강력하게 반대해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20대 국회 들어 유승민 의원(바른정당)과 윤호중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유사한 법을 다시 발의했다.
이 밖에 연대회의는 규모가 작고 영세한 사회적 경제 조직에 불리하게 되어 있는 금융제도를 보완할 것과 사회적 경제 조직이 생산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보상체계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정책제안에서 강조했다. 예를 들어 의료사회적협동조합 병원은 과잉진료를 하지 않고 항생제 사용을 줄여 동네 병원보다 수익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건강 사회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날 협약식에 참석한 3당은 3대 핵심 요구 사항을 포함해 연대회의가 제안한 정책 제안을 대부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윤호중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하는 문재인 후보의 경제 정책에서 사회적 경제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며 “민간에서 만드는 일자리의 20% 정도를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만들”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윤 본부장은 사회서비스를 공공부문만 맡는 게 아니라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영역이 분담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정책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의 이종훈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보육, 요양, 공동주거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을 사회적 경제가 맡아가야 한다며 “이러면 사회적 경제는 저절로 클 것이고, 그런 사회적 기업 가운데 채권을 발행할 정도로 브랜드파워와 자본력을 가진 곳도 나올 수 있다는 게 유승민 후보의 생각”이라고 소개했다.
김용신 정의당 선대위 정책본부장도 “경제민주화의 주체가 튼튼히 뿌리내려야 한다”며 “시민사회단체가 더욱 활성화하고 협동조합이 뿌리내려야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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