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19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방향을 보여줄 설계도이자 시기별·단계별 정책 집행의 로드맵 역할을 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한 달 남짓의 논의를 정리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한 이후 증세 논의가 뜨겁게 타올랐다. 국정위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위해 필요한 재원 178조원을 추가 세수확충 없이 초과세수와 세출 조정으로 대부분을 조달한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실세 장관들과 여당 대표가 증세를 요구하고 나섰고, 문 대통령은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한해 증세한다”며 진화했다. 일부에선 문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정면돌파에 나섰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증세론을 편 이들은 국정위가 제시한 초과세수 60조원에 의문을 품었다. 과다한 추계가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의구심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국정위가 말한 초과세수 60조원은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말 예상한 향후 6년간 세수보다 더 들어올 세수를 가리킨다. 올해를 포함해 2년 연속 매년 10조원이 훌쩍 넘는 초과세수가 발생할 정도로 박근혜 정부는 세수 추계를 보수적으로 해왔다. 국정위는 지난해와 올해 실제 세수를 기반으로 향후 5년간 세수 추계를 했고, 그 결과 박근혜 정부 때 전망보다는 60조원의 세금이 더 들어올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최근 2년간의 초과세수가 이례적 현상이라기보다 박 정부의 보수적 세입 전망이 빚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국정위의 이번 세수 전망은 현재의 경기가 유지된다면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매년 10% 정도씩 세출을 조정한다는 국정위의 구상이다. 세출 조정(60조2천억원)은 주던 예산을 안 준다는 뜻이기에 이해관계자 반발이 극심한 터라 목표 달성이 여간 어렵지 않다. 박근혜 정부도 같은 규모의 세출 절감을 내세웠으나 달성하지 못했다. 따라서 새 정부의 재원 조달 계획에서 구멍은 ‘초과세수’보다 ‘세출 조정’에 있다. 구멍의 크기만큼 국가채무는 늘어나거나 공약 이행에 차질을 낳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 첫 날 회의에 참석해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세출 조정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재원 구멍은 결국 추가 세수 확충으로 메워야 정석이다. 박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란 구호를 외치면서도 사실 세수 확충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집권 첫해(2013년) 단행한 소득세제 개편은 연봉 7천만원 이상 계층의 세 부담을 크게 끌어올렸다. 꾸준한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감면 축소도 이들에 대한 실효세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박근혜 정부가 취임하던 해(2013년) 17%대에서 지난해 말 현재 19% 중반까지 뛰었다. 박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나라 곳간을 채우면서도 재정건전성 강박증에 빠진 나머지 세출 확대에는 소극적이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주요 선진국 중 노르웨이에 이어 두번째로 재정 여력이 풍부한 나라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증세 부담 없이’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확대, 누리과정 전액 국고부담과 같은 복지 확충에 나설 수 있게 된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다음 정부에 미안해야 할지도 모른다. 공약 재원(178조원)은 모두 문 대통령 재임 기간만을 대상으로 추계됐다. 공무원 확충, 아동수당 도입 등 주요 공약은 현 정부 임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나, 이에 대한 고려는 쏙 빠졌다. 결국 다음 정부는 현 정부가 늘려놓은 공공일자리·사회안전망을 줄이거나 공격적 세수 확충에 나서야 한다. 생색은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파급이 큰 증세 부담은 다음 정부가 안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대한 증세에 나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여기서 걷히는 세수는 한 해 국세수입(약 250조원)의 2%가 안 된다. 다른 나라에 견줘 크게 낮은 중산층의 세 부담을 높이지 않는 이상 안정적인 복지 확충은 어렵다. 새 정부도 알지만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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