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금융감독원 수장에 오른 최흥식 신임 원장이 지난 11일 밝힌 취임 일성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대체로 금융산업 발전을 중요시한 역대 금감원장들의 취임사와는 결이 다르다”는 평이 나왔다. 일부에선 최 원장이 금융감독체계 개편 필요성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융정책과 감독을 분리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공약한 바 있지만, 집권 초기 정부조직 개편 최소화 방침에 따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장기 과제로 미뤄둔 상태다.
최 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산업은 양적인 면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국민들의 신뢰는 높지 않다”며 금융감독의 핵심 과제로 금융회사의 건전성 제고와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 금융소비자 보호 등 세가지를 거론했다. 이어 금융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이유에 대해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감독당국의 책임도 있다”고 진단하며,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감독을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역대 금감원장들도 ‘원칙’ ‘기본’을 강조하고 금융회사의 건전성 확보나 금융소비자 보호를 내세우기는 했다. 하지만 ‘견제와 균형’의 필요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더구나 최 원장의 취임사에는 역대 금감원장들이 언급해온 ‘금융산업 발전에 매진하자’라는 식의 표현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역대 금감원장들의 취임사를 보면, 금감원의 주된 역할을 ‘금융산업 발전의 기여’에서 찾는 대목이 적잖게 눈에 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금감원장인 김종창씨(7대 원장)는 취임 당시 “금융산업 발전을 리드하고 국부 증대에 노력하자”거나 “금융감독의 효율성과 금융회사의 경쟁력 제고라는 대의 실현을 위해 금융위원회와 긴밀하게 협조하자”고 밝혔다. 이어 후임 금감원장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금융산업의 안정적 성장을 뒷받침”(8대 권혁세 금감원장), “창조금융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9대 최수현 금감원장), “기술금융 활성화를 적극 지원”(10대 진웅섭 금감원장) 등을 언급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최 원장의 취임사가 역대 금감원장들의 것과 결이 다른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관전평이 나온다. 금융감독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현재의 금융감독 체계를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최 원장이 취임사를 통해 시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총괄하는 기구인 금융위원회를 신설하고, 금감원은 금융위의 하위 기관으로 두는 것으로 정부조직법을 개정했다. 이전에는 금융정책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맡고 금융감독은 금감원이 주도하는 형태였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분리해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던 체계에서 이를 통합해 협력과 지원에 비중을 두는 체계로 바꾼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개편을 한 이후로, 학계와 진보진영에선 적잖은 우려를 표명해왔다. 금융을 경제성장이나 금융산업 발전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는 경제정책 부처에 금감원이 종속되면서 자칫 금융부실 등 금융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예로, 가계부채 규모가 지금처럼 급증한 데 영향을 준 2014년 8월 대츌규제 완화 정책도 건설경기를 일으켜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기재부 방침에 금융당국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탓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금융권 인사는 “최 원장이 과거 금융개혁위원회(금개위) 활동을 한 이력이 눈에 띈다”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과거 학자시절 모두 금융감독·금융정책의 분리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금융감독 개편이 좀더 앞당겨 질 수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금개위는 김영삼 정부 때만들어진 민·관·학 합동 위원회로, 이명박 정부가 바꾸기 전 감독 체계(금융정책과 감독의 분리 및 금감원 신설, 1999~2007년 체제)를 만들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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