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재정이 열쇠다
② 조세개혁 중장기 로드맵 짜자
소득분배 악화에 재정 역할론 확산
증세 논의 없이 ‘지출 조정’만 강조
지난해엔 제한적 ‘핀셋증세’ 그치고
청와대 재정특위도 올해에야 구성
청 관계자 “조세부담률 논의는 제외”
문재인 정부 ‘조세개혁 논의 실종’에
전문가 “대통령이 증세 설득해야”
② 조세개혁 중장기 로드맵 짜자
소득분배 악화에 재정 역할론 확산
증세 논의 없이 ‘지출 조정’만 강조
지난해엔 제한적 ‘핀셋증세’ 그치고
청와대 재정특위도 올해에야 구성
청 관계자 “조세부담률 논의는 제외”
문재인 정부 ‘조세개혁 논의 실종’에
전문가 “대통령이 증세 설득해야”
“일자리 창출,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대해 평시로 생각하면 안 된다.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지출 증가율을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급속한 고령화와 높은 임시·일용직, 자영업 비중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중기 재정에 대한 판단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지난달 31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올해 1분기 소득 불평등이 더 심해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좀 더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을 주문하는 발언들이 쏟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선 재정지출 확대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나온 데 견줘, 구체적으로 세수 확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증세 방안 등은 거론되지 않은 채 과감한 지출 구조조정만 거듭 강조됐다. 정부가 현재의 넉넉한 세수 여건에 기댄 채, 중장기 조세개혁 로드맵을 설계하는 방안에 대해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에 우리나라의 재정 규모는 지나치게 작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을 20.0%로 추정 전망한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2016년 기준) 중 멕시코, 터키 등에 이어 7번째로 낮고,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26.3%로 6번째로 낮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문재인 후보 캠프에선, 정부의 지출 증가율을 임기 내 연평균 7%씩 늘리는 확장적 재정 운용을 공약하고, 내부적으로는 ‘포괄적 증세 로드맵’을 검토했다. 문 후보의 싱크탱크였던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세제개혁 보고서를 보면, 자산이득 등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한편 지나치게 높은 소득세 면세자 비중을 낮추는 등의 중장기 플랜이 명시돼 있다. 대다수 국민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적절한 세금을 부담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보고서는 “세입 측면에서 불평등 완화가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일반적으로 존재한다”며 “조세정책은 세입 확보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재분배 기능은 재정지출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선 이후 지난해 단행된 초고소득자(과표 3억원 초과)와 초거대법인(과표 3천억원 초과)에 대한 소득세·법인세 인상 외에는 제대로 된 증세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정부가 대선과 1년 간격으로 치러진 지방선거를 의식해 증세 논의는 미뤄둔 채, 넉넉한 초과세수 여건과 이전 정부에서도 해온 재정지출 구조조정에만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인수위원회 격이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국정과제 추진에 소요될 178조원의 재원으로, 초과세수 60조5천억원, 지출 구조조정 60조2천억원을 각각 책정했다. 비과세 감면 등 세제 개혁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재원은 11조원 수준에 불과했다. 8월 발표된 국가재정운용계획상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도 애초 공약했던 7%에서 5.8%로 대폭 낮췄다.
정부는 애초 지난해 국세가 241조5천억원 걷힐 것이라며 보수적으로 예산안을 짰다가, 지난해 6월 추경을 편성하면서는 이를 251조1천억원으로 상향 전망했다. 하지만 결산 결과 국세는 265조4천억원이 걷혀 14조3천억원의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 올해와 내년 역시 엇비슷한 규모의 세수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런 초과 세수가 당장 재정 운용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2020년께부터 초과 세수가 크게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출 구조조정 역시 많은 전문가들은 대규모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지출 구조조정은 정책을 효율화하는 측면에서 질적 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줄일 수 있는 예산 규모는 크지 않아 대규모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수단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넉넉한 세수 여건과 지출 구조조정에 안주하면서 조세개혁은 점점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애초 정부는 포괄적 증세 논의를 포함해 조세·재정 전반에 대한 개혁을 추진할 특별기구를 지난해 하반기 설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특위(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은 차일피일 미뤄지다 올해 4월에야 지각 출범했다. 그나마 올해는 보유세 개편에만 논의가 집중됐다. 전반적인 조세개혁 로드맵은 집권 2년차 말인 올 연말 완성돼 집권 3년차에 들어서야 추진될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2020년 총선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기 때문에 조세 저항을 걱정해 여당이 적극적인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특위가 연말에 발표할 예정인 조세개혁 로드맵은 세수를 확충하고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 대비 조세수입)을 높이는 차원에서 논의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위 위원장인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가 지난 3월 한국재정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한국의 조세·재정개혁 과제’에서는 “우리나라의 조세체계는 낮은 조세부담률과 취약한 과세공평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며 두가지 문제점을 꼬집었다. 하지만 조세부담률은 특위의 주요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반쪽짜리 로드맵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위의 폐쇄적인 논의 방식 역시 개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여론을 수렴해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조세·재정 개혁을 하겠다며 특위를 만들었지만, 정작 이렇게 만들어진 특위는 회의 시간과 장소도 알리지 않은 채 비공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특위에 참여한 전문가들에게 논의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받았다.
전문가들은 조세개혁을 전문가들에게 맡겨놓고 정권은 뒤로 물러설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국가의 비전을 먼저 제시하면서 증세 필요성을 직접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조세는 정권의 정치철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게 맡겨서 제대로 개혁하기는 힘들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어떤 국가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재정이 어느 정도나 필요할지 큰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 큰 그림이 없는 상태에서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의사결정은 제약적”이라고 꼬집었다. 구균철 경기대 교수(경제학)는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은 훌륭한 중장기 국가전략이었지만, 재원 마련 방안이 없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쓸 것이다’와 ‘어떻게 걷을 것이다’가 세트로 나와서 국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일종의 복지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4월9일 출범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첫 전체회의를 열고 있다. 정책기획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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