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의 미래와 노동자협동조합’ 국제 컨퍼런스에 참여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일하는사람들의협동조합연합회 제공
4차 산업혁명 시대. 로봇과 인공지능에 치이고 밀려난 사람들…. 도처에서 온통 암울한 전망 뿐이다. 어디 이뿐이랴.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과 양극화, 불평등이 고착화되면서 깊은 수렁에 빠져든 일자리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의 미래와 노동자협동조합 국제 컨퍼런스’는 일자리 위기에서 벗어날 대안을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변화하는 노동 환경 속에서 협동조합의 역할과 가능성을 가늠해 보기 위해 국내외 협동조합 전문가를 포함해 100여 명이 머리를 맞댔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는 일하는사람들의협동조합연합회와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가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국회사회적경제포럼·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전태일재단·한국노총 등 국내의 여러 사회적경제 조직과 노동단체가 공동 주관했다.
기조연설을 맡은 브루노 롤런츠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사무총장은 “협동조합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노동자 권익도 보장하는 대안적 기업”이라고 주장했다. 상호부조와 연대의 가치를 근본으로 삼는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회사의 운영을 결정하고 이익도 공유한다. 소유한 주식에 따라 기업 지분이 달라지는 일반 주식회사와는 달리, ‘1인 1표’의 민주적 운영원리를 바탕으로 조직의 지속가능성과 조합원의 이익을 우선에 두고 운영되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다보니 협동조합 테두리 안에서는 돌봄 서비스 노동자들이나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경계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처럼 기업과 사회에서 외면 받는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도 가능하다.
구체적인 사례도 많다. 예술인을 비롯해 다양한 프리랜서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벨기에의 프리랜서협동조합 스마트(SMart)가 대표적인 예다. 개인 프리랜서들이 사회보험 보장은커녕 일한 보수조차 제때 받지 못하기 일쑤인 건 벨기에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스마트는 조합원들한테서 수입의 6.5%를 받는 대신, 정보통신(IT) 결제 시스템을 통해 사업자들에게 스마트의 이름으로 개별 조합원들의 보수를 직접 청구하고 조합원들에 수익을 돌려준다. 공제보험도 함께 가입해 조합원들이 사회보장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불안정한 시장경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협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2007~8년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래 협동조합 및 상호보험회사들은 주류 보험회사들보다 외려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상호보험회사들은 평균 22%의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전체 보험시장의 평균 수익률은 약 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가 닥쳐 도산 위험에 빠진 기업의 노동자들이 직접 회사를 사들여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한 기업들도 비교적 높은 생존율을 기록하고 있다.
디아나 도브간 국제노동자협동조합연맹(CICOPA) 사무총장은 “노동자들의 기업 인수를 통한 협동조합 전환은 불안정한 노동 환경을 극복하는 새로운 방안이 될 수 있다”며 “다양한 협동조합들간의 연대를 통해 경영 컨설팅부터 금융 지원, 기술 훈련까지 제공받아 기업 생존율을 높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스페인, 포르투갈에는 파산 기업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원활하게 구조조정을 하거나 운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재정적·법적 지원제도가 마련돼 있다.
물론 협동조합의 미래가 온통 장밋빛만은 아니다. 협동조합을 통해 비공식 노동자들이 노동자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아직도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 가장 큰 걸림돌은 협동조합 조합원이 피고용자로서 누려야할 사회보장권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엄형식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연구조사 담당은 “노동자협동조합이라고 해도 제도적 조건이 안 만들어져 있으면 공식 노동자도 오히려 비공식 노동자 지위로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협동조합법 자체가 노동자조합원의 사회보장, 노동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전 세계적으로 완전고용과 정규직만이 이상적인 일자리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좋은 일’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정책과 함께 추진되는 ‘노동 4.0’ 논의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도 독일과 같이 노사정이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좋은 일 찾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ek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