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방문한 김동연 부총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간담회장으로 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정부에 건의한 ‘혁신 신약(오리지널) 건강보험 약가 인상’ 요구는 미국의 다국적 제약업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끊임없이 요구한 ‘숙원’과 뜻하지 않게 일치한다. 삼성과 미국 제약업계의 이해가 공교롭게 접점을 형성한 것인데, 오리지널 약가 결정을 시장의 경쟁논리에 맡기자는 이 부회장의 요구 역시 ‘약가 결정을 보건당국으로부터 독립된 민간 자율기구에 맡기자’는 미국 쪽 주장을 앞장서 되풀이하는 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6일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제품 출시에 따른, 오리지널 의약품 약가의 강제 인하 규정을 개선해달라”고 말했다. 다국적 제약업계가 주로 생산·판매하는 오리지널 약값 결정을 시장 자율경쟁·입찰에 맡기는 쪽으로 제도를 개편해 오리지널 약값이 사실상 ‘인상’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오리지널과 경쟁하고 있는 삼성 바이오시밀러의 경쟁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이 부회장의 요구는 ‘오리지널 약가를 인상해달라’는 미국의 줄기찬 압박을 엉뚱하게도 그대로 되풀이하는 꼴이 됐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약값 제도에서 바이오시밀러 약값은 원칙적으로 특허 만료 이전 오리지널 의약품의 70%까지 받을 수 있는데, 2016년 10월부터는 ‘혁신형 제약기업 등’이 생산하는 바이오시밀러 약가에 한해 80%(상한선)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당국이 복제약 약값을 이미 한차례 인상해줘 삼성으로서는 인상을 재차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그러자 이번에는 다국적 제약업계가 끊임없이 요구해온 오리지널 약값 인상을 주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건강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된 국내 의약품은 2만여개로, 이 가운데 오리지널 제품(5천여개)은 대부분 다국적 제약사가 판매하고 있다.
삼성의 요구는 삼성바이오에피스 복제약 약값은 상한선 인상을 통해 보장을 요구하면서도 오리지널 약값 결정은 시장의 자율경쟁·입찰에 맡겨야 한다는 이중 논리를 담고 있다. 이런 약값 제도 개편 주장은 한-미 에프티에이를 통해 미국의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줄곧 요구해온 ‘시장 경쟁적 약가 결정’ 및 ‘약가 결정을 위한 민간 독립기구 설치’와 궤를 같이한다. 미국의 요구가 반영된 한-미 에프티에이 협정문 제5장(의약품 및 의료기기)은 의약품 급여액(약값)을 결정할 때 “경쟁적 시장 도출 가격에 기초하도록 보장”할 것과 “약가 등재 및 급여액 결정 절차에서 신청자의 요청에 따라 자국 보건당국으로부터 독립된 민간 자율의 ‘약가 권고·결정 검토기구’를 설치·유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미국은 한국이 이 조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압박해왔다.
미국의 다국적 제약업계는 2006년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 당시부터 “한국의 혁신 신약 건강보험 약값이 지나치게 싸게 책정되고 있다”며 “(신약 등) 각종 지식재산권에 대한 인위적 가격 설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오리지널 의약품 약가 결정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으로, 이 부회장의 이번 요구는 흡사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압박을 다시 듣는 듯하다는 말도 나온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