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타이 시민단체 활동가들. 왼쪽부터 국제 시민단체 ‘인터네셔널 리버스(International Rivers)’의 파이린린 소사이, ‘미넷(MEE NET·Mekong Energy and Ecology Network)’의 위툰 펌퐁사차로엥, ‘라오스댐개투자개발모니터단(LDIM·South-Eeat Asia/Laos Dam Investment Monitor’의 쁘렘루디 다오롱.
“피해 지역 사람들의 삶은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땅과 가족,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7월23일 발생한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사고 이후 두 달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현장 상황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피해 범위와 사고 원인을가려내는 작업은 물론이고 피해자 보상 계획 역시 지지부진하다. 국제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메콩강 유역 수력발전 전면 재검토’와 ‘현지 지역사회·환경을 배려하는 투자 및 개발협력 가이드라인 제정’은 더욱 요원한 상황이다.
메콩강 유역 댐 개발 감시 활동을 오랜 기간 벌여온 타이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이번 사고로 피해를 당한 현지 주민이 한국 땅을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타이·캄보디아 출신 활동가 4명과 댐 붕괴로 영향을 받은 지역 출신 캄보디아 주민 1명 등 5명은 18일부터 사흘간 한국에 머물며 현지 상황을 알리고 한국 정부와 기업의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할 예정이다. 18일 오후엔 서울 종로구 에스케이(SK) 사옥 앞에서 “철저하고 투명한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보상에 나서라”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에스케이 계열사인 에스케이(SK)건설은 세피안-세남노이 댐 건설사다. 이들은 또 국회를 찾아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심상정 의원(정의당) 보좌진과 면담을 갖고 한국 정부가 전향적인 노력을 기울이도록 힘써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8일 저녁 서울시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이들 중 세 명과 만나 사고 이후 두 달의 이야기를 들었다.
“피해 지역에서 이제 농사는 끝났다”
- 이번 방문의 목적은 뭔가.
쁘렘루디: 한국 시민사회 티에프(TF)에 참여한 단체들과는 오래 전부터 꾸준히 메콩강 유역 댐 개발을 감시해왔다. 메콩강 댐 개발이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문제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함께 협력하며 감시활동을 벌여 왔는데, 결국 이런 참사가 나고 말았다. 이건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여러 나라의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중에서도 한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위툰: 참사의 본질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진상 규명과 보상은 당연하고, 비슷한 참사를 막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지역사회와 환경을 담보로 한 개발 자체를 되돌아봐야 한다. 이번 참사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그 시작일 텐데, 열쇠를 쥔 한국에서만 인재와 자연재해 여부가 여전히 논쟁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우려스러웠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알리면, 한국 내 인식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 오게 됐다.
- 피해 지역 상황은 어떤가.
파이린: 아주 안 좋다. 한순간에 삶이 무너졌는데,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채 캠프에 살고 있다. 신체적으로는 물론이고 트라우마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다. 피해 지역도 아직 복구가 시작되는 기색 없이 대부분 접근이 통제된 상태다. 물뿐 아니라 진흙이 들이닥친 채로 방치되고 있다.
쁘렘루디: 처음 캠프가 만들어졌을 때, 한 가족당 2천 바트(약 8만 원 )가 제공됐다. 한 달 생활비인데, 살림과 돈 아무것도 없이 몸만 빠져나온 사람들에겐 턱없이 부족하다. 사고 다음 달엔 한 가족당 1kg의 돼지고기가 나왔다. 제공되는 음식도 대부분 인스턴트 제품이라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신선한 채소와 강에서 잡은 생선을 주식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 언제쯤이면 복구가 될 것 같은가.
위툰: 복구는 불가능하다. 이미 피해 지역에서 농사는 끝났다고 보면 된다. 전통적으로 시체나 뼈가 나온 자리에선 살 수 없다는 믿음이 라오스엔 있다. 농사는 말 할 필요도 없다. 마을 인프라를 복구한다고 해서 삶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미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난 사람도 많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진상 규명과 보상, 복구가 어려워질 거라고 보는 이유다.
-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나.
쁘렘루디: 두 달이 지났는데, 누구도 정확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라오스 정부는 사망자가 39명이라고 발표했는데, 도무지 말도 안된다. 피난 중인 주민이 “우리 마을에만 50명 이상이 사는데, 혼자만 살아나왔다. 피난소에 와서도 누구도 찾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사람들은 최소 실종이라고 보고, 실제로는 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사라진 사람들만 2천 명 이상인데, 이런 문제제기에 그 어떤 대답도 없다. 진상 규명도 마찬가지다.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고, 시민사회나 제3자인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어디서도 응답이 없다.
'태국 캄보디아 방한단, 한국시민사회 티에프(TF) 기자회견'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에스케이(SK)건설 앞에서 열려, '라오스 세피란 세남노이 댐 사고 대응 한국시민사회 티에프(TF)' 회원들이 라오스 댐 시공사인 에스케이(SK)건설에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세부사항으로 '태국과 캄보디아 방한단의 면담 요청과 질의에 답할 것', '철저한 진상조사를 진행할 것', '피해지역 복구 및 재건을 위한 장기 지원 계획을 마련할 것' 등을 에스케이건설에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태국에서 온 쁘렘루디 다오롱 ‘라오스댐 투자개발 모니터단’ 활동가는 “라오스에서 7000여명이 댐 붕괴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는데, 2000여명의 상황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라며, “에스케이는 독자적 진상조사를 진행해 이번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지만, 이와 관련한 우리의 질의에 아무 답변도 없다”라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에스케이건설은 만나지 못했는데.
파이린: 안타깝다. 무엇보다 이 사업에 책임이 있는 것은 건설업체다. 무응답으로 일관할 게 아니라, 진상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보험을 들었을 텐데, 어떤 보험을 들었고 보상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에스케이건설은 계속해서 자연재해라고 주장하지만, 건설을 담당한 하청업체가 사고 며칠 전 이미 균열을 봤다고도 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에 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 국회 방문도 했는데, 무슨 이야기 나눴나.
쁘렘루디: 현장 상황의 심각함을 전달했고, 정확한 정보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곳 모두서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김성환 의원은 청와대에 이 사안을 전달하겠다고 말했고, 심상정 의원실은 수출입은행쪽에 세피안-세남노이 댐 관련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에스케이건설이 인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에 대해서도 제대로 원인을 찾겠다고 말했다. 아주 전향적이다.
- 당사자도 아닌 타이 활동가들이 나서는 이유는 뭔가.
쁘렘루디: 라오스에서 나온 전력을 타이가 전량 수입하고 있어 책임감을 느낀다. 또, 국경을 넘어 흐르는 메콩강이 파괴되는 문제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고로 캄보디아나 타이에도 피해가 있었지 않나. 타이 역시 90년대 초반까지 댐 개발을 해오며 많은 지역사회와 환경이 파괴됐다.
- 타이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파이린: 타이 정부엔 해외투자 관련 가이드라인을 재검토하도록 하고, 합작법인(PNPC)에 참여한 라차부리전력에도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타이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보상에 협조를 요청하는 성명을 보냈고,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10월2일에 타이에서 포럼을 기획하고 있는데, 잘 진행되면 라차부리전력측을 불러 직접 발언하게 할 수도 있다.
“피해주민들도 한국인과 똑같은 사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위툰: 무조건 한국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직접 관여한 일로 참사가 났을 때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도 과거 힘 센 나라에 의해 착취당한 경험이 있지 않나. 지금 라오스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본과 힘있는 나라로 인해 가장 약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한국답게 연대의 정신을 보여주면 좋겠다.
쁘렘루디: 생각보다 한국에 와서 만난 국회의원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여 기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진상 규명과 보상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다. 라오스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들이 입국한 18일, 환경부는 “앞으로 국내에서 국가주도 대규모 댐 건설은 없을 것”이라는 발표를 냈다. 4대강 사업으로 망가진 한반도의 강줄기를 보며,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정부가 나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인정한 지금, 우리 앞에는 또 다른 질문이 남는다. 메콩의 자연환경은 우리의 자연환경보다 덜 중요한가? 누군가의 삶 전체를 담보로 한 경제적 이익은 정당한가?
19일 서강대학교 가브리엘관에서 한국 시민사회 티에프와 타이 시민사회 활동가, 캄보디아 주민이 함께 만든 포럼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댐 사고 무엇이 문제인가: 메콩의 목소리와 한국’포럼이 열렸다.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자는 것이다.” 19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댐 사고 무엇이 문제인가: 메콩의 목소리와 한국’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타이 활동가 위툰 펌퐁사치로엥이 마지막으로 들려준 이야기가 오래도록 귓전을 맴돈다. “세피안-세남노이 댐 주변에 살던 사람들도 한국인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만 생각하면 어떻게 풀어나갈지 쉬운 문제다.”
글·사진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