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총수일가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엘지(LG) 등 4대 그룹의 대응 방식이 제각각이어서 눈길을 끈다.
재벌 쪽에서 사익편취 규제 강화는 최대 이슈다. 법 개정이 되면 규제 대상이 대폭 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입법예고에서 규제대상을 상장사도 비상장사와 같이 총수일가 지분 3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회사가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자회사도 규제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삼성의 웰스토리, 현대차의 글로비스와 이노션, 에스케이의 인포섹, 엘지의 서브원 등이 새로 규제를 받게 된다.
엘지는 발빠르게 선제대응에 나섰다. 지주회사 ㈜엘지의 자회사인 서브원은 소모성자재구매(MRO) 사업을 별도 회사로 분리한 뒤 지분 상당수를 외부에 매각하기로 했다. 서브원의 60%를 차지하는 엠아르오는 내부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물류 계열사인 판토스의 구광모 회장 지분(19.9%)도 미래에셋대우에 팔기로 했다. 엘지는 “사회적 요구를 감안해 법 개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판토스의 경우 법 개정이 이뤄져도 규제대상이 아니지만 논란 자체를 해소시키기로 해,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엘지는 판토스 지분매각이 상속세 납부용이라는 지적에 대해 “전체 세금은 9천여억원인데 지분 매각액은 수백억 수준”이라며 부인했다. 엘지는 그러나 내부거래 비중이 60%인 엘지씨엔에스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방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에스케이도 지주회사 ㈜에스케이의 자회사인 에스케이해운의 최대주주 자리를 외부자본에 넘긴데 이어 자회사인 아이티(IT) 보안업체 인포섹을 에스케이텔레콤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법 개정이 이뤄져도 인포섹은 규제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인포섹의 내부거래 비중은 70%에 육박한다. 또 회사기회 유용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는 에스케이실트론의 최태원 회장 지분(29.99%)을 그냥 고수할 계획인 것도 논란거리다. 이런 속사정 탓인지 에스케이는 “해운과 인포섹의 지분 매각은 사업 구조조정 차원”이라고 강조하며, 공정거래법 개정과 연관짓는 시각을 부담스러워한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삼성물산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웰스토리(급식사업)가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사례로 꼽히지만, 아직 대응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호텔신라는 웰스토리를 인수해 규제를 회피하려 한다는 소문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웰스토리는 현재 진행 중인 공정위 조사에서 법 위반 혐의가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간부는 “매출의 40% 가량이 내부거래이고, 그 대부분이 수의계약으로 체결됐으며, 당기순이익의 대부분을 배당으로 지급해 사실상 총수일가의 승계 자금줄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웰스토리가 2014~17년 삼성물산에 배당한 금액은 모두 2400억원에 달한다. 삼성물산의 총수일가 지분이 31%인 점을 고려하면, 1500억원 이상이 총수일가 주머니로 들어간 셈이다. 한 중소 급식업체 대표는 “삼성 같은 재벌이 한끼당 평균 4천원에 불과한 급식시장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와 제일패션리테일도 새로 규제대상에 포함된다.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글로비스의 총수일가 지분을 정리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원천적으로 해소하려던 계획이 무산되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자동차의 실적부진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룹 임원은 “법 개정 이후 유예기간 중에 지배구조 개편을 끝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고회사인 이노션은 계열분리를 시켜 정몽구 회장의 장녀인 정성이 고문(지분 27.99%)이 맡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4대그룹 임원은 “공정거래법 개정과 관련한 4대그룹의 대응에 큰 온도차가 있다”면서 “법 개정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엘지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삼성이 가장 대비된다”고 말했다. 이총희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기업은 사익편취 문제의 근본 해결보다 회피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면서 “사익편취는 총수일가 이익과 승계에 직결돼 있어 자발적으로 포기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총수일가의 간접지분까지 규제하는 방안을 포함해 공정위 법 개정안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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