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위원장이 22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에서 열린 경제계 간담회에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의 제공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공약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이 보수와 진보 진영 양쪽으로부터 반대 내지 비판을 받고 있어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22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계를 대상으로 정책 간담회를 열고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의 최종안을 공개했다. 공정위는 지난 8월 말 4차 산업혁명시대의 경제환경에 맞는 경쟁법으로 현대화한다는 취지로 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두달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해 왔다.
최종안은 위법성이 강한 ‘경성담합’에 대한 전속고발제 폐지 등 기존 입법예고안의 골격을 대부분 유지했다. 특히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강화,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재벌 소속 공익법인과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 강화,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등 재벌개혁 방안도 손대지 않았다. 다만 위원회의 전문성·독립성 강화를 위해 비상임위원 4명을 모두 상임위원으로 바꾸는 방안을, 행정안전부 등 관련부처의 반대로 제외했다.
공정위는 지난 18일 법개정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상정한 데 이어 법제처 심의와 차관·장관회의를 거쳐 11월 말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김상조 위원장이 정계·경제계·학계·법조계·언론계 등을 대상으로 모두 19차례 토론회와 간담회를 가질 정도로 의견수렴과 여론 정지작업에 ‘올인’했음에도 국회 통과 전망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한상의·경총 등 경제단체들은 기업 부담 가중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도 당론을 내놓지는 않았으나, 소속 의원들은 토론회를 통해 경제계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은 “기업활동을 옥죄는 규제 일변도”라며 “기업 활동과 시장거래의 자유와 창의가 존중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간부는 “야당은 법개정안의 일부 문제점을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 핵심 내용에 모두 반대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의 이런 태도는 지난해 대선 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전속고발제 폐지 또는 개선,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강화를 약속했다.
반면 경제개혁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규제 회피가 용이한 만큼 미흡한 방안이라 비판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과 관련해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을 상장사도 비상장사와 같이 30%에서 20%로 확대하면서 이들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를 포함시키는 대목이다. 일부 재벌그룹은 이 법 개정과 관련해 규제 회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스케이그룹은 지주회사인 에스케이㈜의 100% 자회사인 에스케이인포섹의 지분을 에스케이텔레콤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인포섹은 에스케이㈜의 자회사에서 손자회사로 위치가 바뀌면서 70%를 넘는 내부거래를 줄이지 않고도 규제를 빠져나갈 수 있다. 삼성도 삼성물산이 가진 웰스토리 지분 100%를 신라호텔로 넘겨 규제를 피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신라호텔은 부인 공시를 냈다.
야당이 반대입장을 고수하면 여당의 힘만으로 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럴 경우 김상조 위원장이 그동안 강조해온 1단계 ‘갑질근절과 법집행 강화’→2단계 ‘재벌의 자율개혁을 유도하는 포지티브 캠페인’→3단계 ‘개혁이 미흡한 부분은 법제도 개정’이라는 ‘3단계 개혁론’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이 실패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 강정민 연구원은 “최종안에 포함된 재벌개혁 방안은, 재벌의 자발적 개혁이 미흡한 가운데 마련된 정책으로는 불충분하고 실효성도 의심된다”며 “이마저도 경제계와 야당의 반대로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면, 결국 문재인 정부의 개혁 의지 부족이 비판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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