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고별사처럼 들렸다.”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한 장관은 회의가 끝난 뒤 이렇게 털어놨다. 일부 언론을 통해 이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시교체설이 보도된 뒤여서 국무회의에서 김 부총리가 보여준 모습은 참석한 장관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김 경제부총리는 국무회의 안건처리가 모두 끝난 뒤 최근 한국경제 상황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혔다. 한 참석자는 “경제부총리가 정식안건에도 없는 주제에 관해 꽤 길게 발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발언 내용도 의미심장했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 장관의 전언을 종합하면, 김 경제부총리는 “야당과 언론이 경제위기가 아니냐고 묻는 데 대해 위기라고 할 수도 없고, 위기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며 “비공개 자리인 국무회의에서 장관님들에게는 ‘우리 경제가 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증시가 나쁜 것은 주로 대외요인 때문으로, 투자·고용 지표가 좋지 않지만 수출·환율 등 다른 지표는 나쁘지 않다”며 “내년부터 지표가 호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그동안 “내년초에도 고용문제나 경기가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온 것과 큰 차이가 난다.
또 김 경제부총리는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한달, 2~3개월 경제지표에 정부가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며 “멀리 보고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또한 그가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며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온 것과 다르다. 국무회의 한 참석자는 “마지막 대목은 마치 차기 경제팀에 대한 당부처럼 들렸다”고 귀띔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김 경제부총리에게 “경제상황과 관련해 할 말 있느냐”며 발언 기회를 준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정부 관계자는 “총리가 대통령과 이미 인사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안다”며 “총리가 물러나는 경제부총리를 배려한 차원 아니겠냐”고 말했다.
청와대는 10월 중순 ‘김동연 경제부총리-장하성 정책실장 동시교체’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사실무근”이라고 잡아뗐다. 하지만 정부 안에서는 진작부터 두 사람의 교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인사의 직접적 발단은 장하성 실장의 사의표명 때문으로 알려진다. 정부 관계자는 “야당의 소득주도성장정책 폐기와 책임자사퇴 주장과 상관없이, 장 실장이 9월 초 이미 사의표명을 했다”며 “대통령이 이미 강조했듯이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더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자신과 김 부총리를 포함한 경제팀 교체를 통한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정책실장의 한 지인도 “장 실장은 자리에 연연하는 분이 아니다”라며 “취임 때부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물러날 것이라는 얘기를 해왔다”고 전했다.
장하성 실장의 후임자로는 김수현 사회수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노무현 정부 때 사회정책비서관으로 일한 김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린다. 김 수석은 지난해 5월 정권 출범 때도 정책실장 후보 중 하나로 꼽혔다.
후임 경제부총리 인선은 청와대 정책실장과 달리 상당한 진통을 겪었으나, 최종적으로 홍남기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이 확실시된다. 총리실은 31일 일부 언론에 ‘홍남기 차기 경제부총리 내정’ 보도가 나온 뒤 확인 요청에 대해 “그런 것으로 안다”며 사실상 시인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ㄱ씨, ㄴ씨 등이 후보로 추천됐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일한 전력과 경제에 대한 기본시각 차이 때문에 제외된 것으로 안다”고 분석했다.
인사 발표가 늦어진 배경에는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 교체방식에 대한 고민도 작용했다. 장 실장과 김 부총리는 그동안 수차례나 엇박자 내지 갈등설이 불거졌다. 청와대 안에서도 진작부터 두 사람은 공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정권 출범 이후 두 사람을 지켜봤던 정부의 한 고위인사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가 부자증세, 복지 확대, 예산 확대,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한 일자리 안정자금 등 중요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김 부총리의 반대로 충돌이 있었다”며 “김 부총리는 대통령 지시에 대해서도 자기 생각과 다르면 끝내 답을 하지 않는 일도 있다”고 귀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야당과 보수진영에서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의 폐기와 장하성 정책실장의 퇴진을 주장했다. 두 사람의 동시교체는 개혁정책 추진과 관련해 국민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선 경제부총리 경질-후 정책실장 후 사의 수용’의 수순이 검토됐으나, 동시교체로 전격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이낙연 총리가 동시교체론을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인사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것은 오는 5일부터 1주일 간 예정된 국회에서의 내년도 예산심의가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책임자인 경제부총리가 ‘유고’ 상황이 되는 것은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기 때문에 국회 심의 직후가 유력하다. 하지만 언론에 동시교체설이 기정사실로 보도되기 시작한 만큼 청와대의 발표 시기가 좀 더 앞당겨질 가능성도 생겼다.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의 투톱 구조는 ‘청와대 정책실장은 개혁성향 전문가(장하성)-경제부총리는 보수성향 관료(김동연)’로 짜였다. 2기 경제팀의 유력 후보자들도 같은 모양새다. 또 두 사람 모두 문재인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내부인사들이다. 기존 경제개혁정책의 지속적 추진이 예상돼 안정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지럽게 꼬여있는 경제현안 실타래를 제대로 풀어내는 타개 능력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2기 경제팀 앞에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과거정부 정책과 차별성 없이 변질된 혁신성장 정책을 바로잡아, 개혁성과를 조기에 가시화하고 국민 지지를 얻어내야 할 무거운 과제가 놓여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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