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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청년 창업 들어오니 기존 가게도 ‘북적’…시장에서 만난 ‘혁신’

등록 2018-11-28 17:38수정 2018-11-28 20:26

[더 나은 사회] 충남 금산군 금산시장
공실률 40% 이르며 인적 드물던 곳
청년·시니어 창업자 지원으로 가게 25곳 새로 열고
극장까지 들어서며 ‘활기’

중앙부처 협업과 지방정부 노력에
기존 상인-청년 상인 주체성 더해
또 하나의 지역혁신 모델로 눈길
충남 금산군 금산읍 금산시장의 ‘청년몰 시네마켓’.
충남 금산군 금산읍 금산시장의 ‘청년몰 시네마켓’.
지난 26일 오후 충남 금산군 금산읍 금산시장. 서울에서 가는 직행버스가 하루에 8대뿐인 시골 동네 시장인데, ‘이런 데가 있네’ 싶은 잡화점 ‘별금방’이 눈길을 잡아끈다. 중년 여성 둘이 니트와 바지 등을 골라 입어보며 겨울 채비에 신이 났다. 지난 6월 들어선 극장 ‘금산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려고 나온 길에 들렀다고 했다. 이들이 북적대는 사이, 단골이라는 젊은 여성 한명도 들어와 옷 구경에 빠졌다. 주인 전서은(35)씨는 “에스엔에스(SNS)엔 감성을 자극하는 가게가 넘치는데 금산엔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옷, 가방, 신발 등 재밌는 구경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잡화점을 열게 됐다”고 했다.

금산시장의 새로운 중심지 ‘청년몰’

금산시장엔 이렇게, 시골 시장 하면 으레 떠오르는 풍경과 달라 ‘어?’ 소리가 나는 가게 25곳이 자리잡은 골목 ‘청년몰 시네마켓’이 있다. ‘홍삼 내리다’는 금산 특산물인 인삼을 주인 김명원(37)씨와 가족들이 직접 재배해 홍삼으로 가공한 뒤, 이를 다시 로스팅·분쇄해 핸드드립 커피처럼 내려주는 ‘코리아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문 연 지 얼마 안 됐지만 맛으로 소문이 나 예약을 안 하고는 들어갈 수도 없다는 초밥집 ‘인우’, 직접 만든 파이와 마카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수제 파카롱’ 같은 음식점에 리본 가게 ‘수피아 리본’, 옷가게 ‘달켓’ 등 비음식점도 있다.

청년몰에 입점한 ‘홍삼 내리다’의 김명원씨가 로스팅해 분쇄한 홍삼으로 ‘코리아노’를 만들고 있다.
청년몰에 입점한 ‘홍삼 내리다’의 김명원씨가 로스팅해 분쇄한 홍삼으로 ‘코리아노’를 만들고 있다.
대체로 지난 6월 장사를 시작한 청년몰 가게의 월평균 매출은 580만원. 없던 가게 25곳이 생겨나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시장의 다른 가게들도 함께 북적이기 시작했다. 34년 동안 금산시장을 지켜온 ‘만두마당’ 사장 김민주(55)씨는 “그 전엔 노인들만 오셨었는데 요즘엔 시장이 깨끗하고 밝아지니 청소년들도 많이 온다. 음식 장사는 가게들이 모여 있어야 서로서로 잘되는데, 청년몰에 그런 가게들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마음이 부풀었었다”고 했다. 장례용품 등을 30여년 판매해온 김해석(63)·노광순(61)씨 부부도 “빈 가게가 많고 사람이 안 다니니 쓸쓸하기 짝이 없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시장에 활기가 돈다”고 말했다.

청년몰에 입점한 ‘신셰프 불맛 짬뽕’의 짬뽕밥. 가게 이름처럼 불맛이 살아 있다.
청년몰에 입점한 ‘신셰프 불맛 짬뽕’의 짬뽕밥. 가게 이름처럼 불맛이 살아 있다.
1981년 개설된 금산시장은, 금산군 인구가 12만명이 넘던 그 당시만 해도 “인삼 판 돈을 포대에 넣어 지고 다니는 사람이 수두룩할 정도”(박국신 금산읍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추진위원회 사무장)로 풍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 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인구가 줄어 웬만한 광역시의 동 2개 수준인 5만4천여명에 불과하다. 덩달아 시장도 축소돼 공실률이 40%에 이르렀고, 그나마 운영되던 점포 40곳 중에서도 마수걸이조차 못 하는 가게가 하루에 대여섯곳이나 됐다. 명색이 시장인데 채소 가게조차 사라졌을 지경이었다. ‘특단의 조처’가 없이는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셈이다.

부처 간 협업이 바탕

열쇠는 지방정부의 노력과 부처 간 협업이었다. 금산군은 지역의 생활·경제 중심지로서의 시장 기능을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춰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다. 그중 핵심이 금산시장 창업골목 조성이었다. 예산 37억원을 들여 빈 점포를 매입하고, 수도·가스 등 장사를 할 기반 공사를 진행했다. 동네가 뜨면 임대료까지 뛰어 세입자가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고, 안정적인 창업 기반을 조성하려는 시도였다. 이와 함께 창업 희망자를 모집해 사업 아이템이 적절하고 교육도 잘 이수한 25팀에 가게를 내줬다. 애초엔 만 60살 이하까지 모집했는데,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청년몰조성사업에도 선정되면서 지원 대상이 만 39살 이하로 바뀌었다. 이미 선정된 만 40살 이상 창업 희망자 7팀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두 부서와 금산군, 사업 위탁운영자인 지역활성화센터 등이 의견이 갈렸다. 협의 끝에 이들 ‘시니어 그룹’도 39살 이하 ‘청년 그룹’과 똑같이 2년간 임차료를 면제해주고, 인테리어 비용의 60%를 지원해주게 됐다. 정철순 청년몰 조성사업단장은 “청년과 시니어 창업자가 함께 모인 ‘복합 청년몰’은 전국에 금산밖에 없다. 지금은 중기부에서도 다른 지역에 복합 청년몰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안에 있는 금산시네마 개장은 ‘마지막 한 수’였다. 금산엔 수십년 동안 극장이 없어 영화를 보려면 대전까지 나가야 했다. 그런데 농식품부의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비 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작은영화관사업비 등을 합쳐 42억여원을 들인 개봉관(2개관. 각각 100석, 50석)이 생기자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호응이 쏟아졌다. 청년몰 이름을 ‘시네마켓’으로 지은 것도 극장 때문이다. 영화를 보러 왔다가 시장을 한바퀴 도는 이들이 생겨나니 시장의 유동인구와 매출도 자연스레 올랐다.

청년몰에 입점한 잡화점 ‘별금방’.
청년몰에 입점한 잡화점 ‘별금방’.
혁신의 힘은 결국 ‘주체성’

요즘 금산시장은 지역 혁신의 ‘선진지’로 꼽혀 지방정부, 지역 혁신 관련 단체 등 월평균 6곳에서 견학을 온다.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는 시장의 기존 상인과 청년몰 상인들의 소통, 주민들과의 적극적인 교류 등 ‘주체적 역량 강화’가 큰 역할을 했다. 금산시장엔 기존 상인과 청년 상인, 창업 희망자들을 교육·지원하는 간디학교 교사 등이 함께 참여하는 ‘시장사업운영위원회’가 있다. 정기적으로 모여 시장에서 생긴 크고 작은 일을 논의하고, 시장 발전이 곧 지역 발전이라는 공감대 아래 신뢰를 쌓고 있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큰 규모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보니, 이해관계가 엇갈려 사업이 무산 지경에 이른 순간도 있었다. 대체로 60대 이상인 기존 상인들이 볼 땐 이른 새벽부터 나와 밤늦게까지 일하던 자신들과 달리 청년들이 ‘한가해’ 보이기도 한다. 청년들이 볼 땐 이것저것 걱정해주는 기존 상인들의 이야기가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청년몰 조성사업단과 주민 커뮤니티 공간 ‘금산행복뜨락’ 등을 중심으로 워크숍도 가고, 마니토 게임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런 노력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 한두달에 한번 여는 월장이다. 월장은 주민 축제로 운영하는데, 상인들이 음식을 내놓기도 하고 주변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갖고 나와 판매하기도 한다. 올해는 ‘찾아가는 월장’이라는 이름으로 유치원이나 마을회관 등에서 사연을 받아 모두 12곳에 찾아가 간식을 전해주고 오기도 했다. 옛날 시장처럼, 금산시장이 그저 장사만 잘되는 곳이 아니라 지역 주민 생활과 소통의 중심지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물론 희망만 있는 건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금산군이 매입하지 않은 가게의 임대료는 서너배씩 올랐다. 청년몰에서도 아직 매출이 만족스럽지 못한 가게가 있고, 기존 상인들 중엔 왜 지원이 청년몰에만 집중되느냐고 불만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바람은 “청년들이 금산시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정철순 단장은 “임차료 지원이 끝나는 2년 뒤, 청년몰의 70% 이상은 생존해 이곳이 청년들의 생활 터전이자 보금자리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산/글·사진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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